바람의딸 한비야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을 읽고나서 국어독후감 바람의딸한비야걸어서지구세바퀴반

바람의 딸 한비야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 21세기 유목민, 배낭족의 사랑과 이별
한비야 씨는 베트남에서 처음 본 필립이라는 미국인을 한 달 후에 캄보디아에서 다시 만났는데 6개월 후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끝인 중국 신쟝의 카슈가르에서 또 만났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끈질긴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필립은 국제기구에서 일했었다.
한비야 씨가 캄보디아의 앙코르 지역을 떠나기 전날, 베트남에서 구치 땅굴로 함께 일일관광을 갔던 필립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반가웠다고 한다. 베트남 구치 땅굴에서 좁은 땅굴 입구로 들어가 몸을 숨기는 시범을 할 때 가이더가 일행 중 몸집이 제일 작은 한비야 씨에게 들어가 보라고 했다. 일행들은 땅굴 입구에 들어간 한비야 씨를 사진 찍느라 한비야 씨에게 이래라 저래라 했다고 한다. 땅굴에서 나오자마자 감상을 묻는 가이더의 모자를 낚아챈 한비야 씨는 모델료부터 챙겨야 한다고 장난…(생략)

한비야 씨처럼 여행 중독이 되었다고 했다. 호주에는 벌써 다녀왔고 한비야 씨의 엽서도 잘 받았다고 했다. 두 달 전에 다시 사촌동생들과 중국으로 와서 티베트에 갔다가 혼자서 실크로드를 통해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이었고 그때 캄보디아에서 한비야 씨가 8월 중순쯤 여길 지날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고 말했다. 또 다니면서 한비야 씨 생각 많이 하고 어느 날은 한비야 씨 생각만 했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필립이 한비야 씨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 생각을 많이 하고 그 사람 생각만 한다고 들었다. 혹시 필립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립은 갖은 욕을 먹어가며 배낭족들이 주로 묵을 만한 숙소의 투숙객 명단을 일일이 살펴보았는데 이름이 없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모를 해놓았다면서 흥분한 기색을 못내 감추지 못했다. 한비야 씨도 그동안 필립과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인지 필립이 한비야 씨의 두 손을 자기 볼에 가져다 댔다 놓았다 하는 것과 같이 이런 행동들이 하나도 싫거나 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비야 씨와 필립은 식당이 문을 닫을 때까지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얘기를 했다. 저녁도 굶고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이었다. 필립이 한참 망설이다 일요시장에 같이 가자고 다음날 아침 8시에 한비야 씨의 숙소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새벽 6시에 필립이 숙소에 찾아왔다. 한비야 씨는 우리 8시에 만나기로 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러자 필립은 베이징 시간으로 지금이 8시라고 신쟝 시간으로 하면 두 시간이나 늦게 만나게 되면 안 된다고 했다. 한비야 씨는 금방 준비할 테니까 호텔 로비에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 세수를 하고, 좋은 샴푸 냄새를 풍기려고 어제 감은 머리를 또 감았다. 얼굴에 바를 것이라고는 로션 하나밖에 없었고 예쁘게 보이고 싶은데 립스틱조차 없어서 속상했다고 한다. 옷도 필립이 한비야 씨를 처음 보았을 때 입었던 고동색 원피스를 꺼내 보았는데 너무 구겨져서 도저히 입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비야 씨는 하는 수없이 캄보디아에서 산 앙코르 와트가 그려진 회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갔다. 필립과 한비야 씨는 일요시장을 재미있게 구경했다. 구경하던 중에 필립은 악기점이나 민속의상을 파는 가게를 만나면 나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졸랐다고 한다. 재회의 기념으로 무언가를 한비야 씨에게 꼭 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비야 씨는 나그네는 길에서 짐을 만들지 않는다고 사줘도 못 가지고 다닌다며 거절했다. 한나절 시장구경을 실컷 하고 다시 호텔 앞 카페에 앉았다. 그 때 필립이 한비야 씨에게 무엇인가를 주었다. 그것은 한비야 씨가 시장에서 관심 있게 만져보던 위구르족의 은장도였다. 한비야 씨는 필립에게 고맙다고 하고 한국에서도 옛 여성들이 정절을 지키기 위한 자살용 은장도를 가지고 다녔다고 했다.
다음날 필립과 한비야 씨는 호탄 가는 한비야 씨의 버스표를 예매하고, 필립이 파키스탄 국경 도시까지 가는 버스표를 사러 갔다. 필립은 심각한 얼굴로 조용한 곳으로 가 한비야 씨와 얘기 좀 하자고 했다. 필립은 한비야 씨에게 자신이 지금 한비야 씨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필립은 중국비자가 내일 끝나도 벌금을 1,000달러라도 낼 수 있고 같이 힘든 여행을 다니면서 서로 굳게 사랑하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며 확인만 되면 여행 끝날 때쯤 결혼하자고 했다. 한비야 씨는 생각했다. 자신은 이 사람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베트남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친다 해도 알고 지낸 지가 겨우 7개월이다. 그 7개월 중에서 겨우 며칠간을 같이 다녔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필립에게 프로포즈를 받았다. 한비야 씨는 만날 때부터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는 방랑자의 사랑, 유목민의 사랑의 한계이자 비극이다. 그래서 한비야 씨는 결국 프로포즈를 받지 않고 그 날 저녁에 필립을 마지막으로 만나고 다음날 한비야 씨 혼자서 타클라마칸 사막 남단의 호탄으로 길을 떠났다. 정말 비극적이다. 내가 한비야 씨였더라도 프로포즈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 7개월 중에서 겨우 며칠간을 같이 다녔을 뿐이다. 내 생각으로는 보통 연인들을 보면 1년 정도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이 맞으면 결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비야 씨의 경우 이렇게 갑자기 프로포즈를 하면 당황할 지도 모르고 한비야 씨는 만날 때부터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상황을 꼭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프로포즈를 거절했을 것이다.
한비야 씨는 이번 여행 중 방글라데시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길에 잠깐 들른 인도 바라나시의 한 숙소에서 모인 ‘크레이지 클럽’ 친구들에게서는 서양 배낭족의 정서와 인생을 보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크레이지 클럽’은 ‘미친 친구들 클럽’ 이라는 뜻이다. 각기 다른 나라의 여행자인데 같은 숙소에 묵는 사람들이다. 정상적 행동이 아닌 행동을 하는 클럽이라고 한다. 거기서 아시망이라는 독일 사람은 5년짜리 비자를 받아왔는데, 갠지스강을 다시 보았으니 이제 북쪽 히말라야로 들어가서 5년 동안 바깥 세상에는 안 나올 작정이라고 하고 로빈이라는 프랑스 사람은 3년째 인도와 일본을 왔다갔다하며 인도에서 싸구려 장신구를 사다가 일본 길거리에서 팔고 있는데, 한 일본 여자를 짝사랑하면서부터 번 돈을 그 여자한테 줄 선물로 다 써버린다고 한다. 또 저스틴이라는 중국어 전공에 동양종교를 부전공으로 하는 호주 대학원생은 잠은 기차역 대합실이나 일등석 웨이팅 룸(승객이 하룻밤을 기다릴 수 있는 곳이다.)에서 자고, 밥은 길거리나 시장에서 사먹거나 절이나 사원에서 얻어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베이징에서 호주 시드니까지의 비행기표는 있으니까 만약 중국에서 일이 여의치 않으면 호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또 이번에는 한비야 씨의 얘기도 해보라고 하는 클럽 친구들에게 한비야 씨는 너희들에 비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서 이번에 인도에 와서 2주일만 머무는 것이 아쉽다니까 클럽 친구들이 왜 겨우 2주일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지난번 원래 3개월 예정으로 인도에 왔다가 5개월 만에 떠나면서도 너무 아쉬워서 비행기 안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이번에는 인도에 발목을 잡히지 않으려고 일부러 빨리 간다고 했다. 이러한 행동이 비정상적 이여서 ‘크레이지 클럽’이다.
바라나시를 떠날 때 한비야 씨는 예정대로 파키스탄과의 국경에 있는 암리차르로 떠났다. 짧은 동안 정들었던 클럽 멤버들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했지만 이제 내 갈 길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배낭족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방식이라고 한다. 다양한 국적과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길을 가다가 우연한 교차점에서 만나 인연만큼 함께 어울리다 인연이 다하면 헤어진다. 한비야 씨는 이별은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그들은 인연이 닿으면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인연이 없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라면 정들어서 헤어질 때 아쉬워할 것이다. 어쩌면 너무 정이 들어서 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비야 씨는 그렇게 정이 들어서 아쉬워 할까봐 미리 일찍 떠난다고 하니 정말 대책이 있으신 분인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대책 같은 것을 하지 않아 여태껏 헤어질 때 아쉬워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