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과 머저리를 읽고 병신과머저리 이청준

병신과 머저리를 읽고..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라는 작품은 6.25가 남긴 상처와 비극을 소재로 한 내용이다. 전쟁에 참여하여 직접 전쟁의 참상을 겪은 형과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동생인 ‘나’ 가 나온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형은 한 소녀의 수술을 실패하여 병원을 그만두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의사가 등장하는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잘 설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생물학자. 의학자를 꿈꾸는지라 만약 나한테도 저런 일이 생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필연적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그저 직업상의 실수, 또는 원래 성공 가망성이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고 넘겨버릴 수 도 있다. 그렇지만 그 ‘직업상의 실수’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생 죄책감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무서운 일. 나는 그래서 형의 괴로움을 약간이나마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생략)

는 형의 태도가 전쟁을 겪지 않고 실감도 나지 않는 나에게까지 어떤 참혹함과 거칠어진 사람들의 심성을 느껴지게 했다. 형의 소설의 첫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형은 노루사냥조차도 힘들어 할 정도로 심성이 여린 사람이었는데 전쟁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변하게 할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어느 날 형의 소설을 읽은 동생은 줄거리가 빨리 전개되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자기가 결말을 지어놓았다. 그 결말은 ‘형이 김 일병을 죽이는’ 것이었다. 동생은 도덕 또는 윤리가 그런 상황에서는 지켜지기 힘들다고 생각했었나보다. 하지만 형의 결말에서는 오관모가 김일병을 죽이고, 형은 오관모를 죽였다. 자신을 변하게 하고 세상을 너무 각박하게 만들어 놓은 전쟁과 오관모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소설 속에서라도 복수를 하고 후련한 결말을 만든 형은 그것으로 자신의 상처가 어느정도 치유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형은 혜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오관모를 만났다. 자신의 소설 속에서 오관모는 죽었지만, 현실 속에서는 죽지 않았다. 김일병을 죽여놓고 자신은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형은 집에 와서 원고지를 다 태워버린다. 으음. 만나지 않았다면 깔끔하게 끝났을 것인데... 그렇지만 형에겐 오관모의 생사 자체는 별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벌써 소설을 통해 죄책감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다시 병원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생은 그리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형은 경험에서 오는 상처를 갖고 있었지만 동생은 그런 경험도 없고 자신의 괴로움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런 답답한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해낼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려면 자신의 뚜렷한 주관과 명확한 주제가 필요하다. 그것이 없이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전혀 엉뚱한 그림을 그려내거나 화폭을 다 채우지 못한다. 그러니 표현은 하고싶지만 어떻게 무엇을 왜 표현하고 싶은지 모르는 동생이 진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동생에게 형이 욕을 한다. 병신, 머저리라고.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괴로움은 경험에서 오는 괴로움보다 더 힘들 것 같다. 형이 소설을 통해 괴로움을 치유하였듯이 동생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멋지게 화폭을 채울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