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을 읽고 불꽃…

불꽃
저자 : 선우휘
출판사 : 민음사
불꽃...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강한 의지나 희망이 있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글의 주인공일 `현`이란 사람은 가슴속 한 구석에는 무엇이 있으나 소극적인 사람이다.
이 글의 배경은 3.1운동 때부터 한국 전쟁 직후 동안의 격동기, P고을이 중심이다.
1919년 3월, 일요일도 아닌 어느 날에 P고을의 조그만 교회 안에서는 남녀 교인들의 모임이 열렸다. 한 늙은 교인이 다른 교인들에게 태극기 한 장씩을 나눠주자 일행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선두에 선 젊은이는 만세를 절규했다. 경찰서 가까운 싸전 가게 앞에 갔을 때, 싸전 가게 주인인 혹 달린 할아버지는 비명을 지르고 나서 주저앉아 버렸다. 선두에 선 젊은이가 자신의 아들이었기에...
만세소리 대신에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한 시간 뒤 도로에는 시체…(생략)

`현`이 중학을 졸업하고 나서 대학 가기를 거부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다음해 봄에 낡은 트렁크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현`은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라 생각하고, 사람들도 생각보다 인정이 많고 살뜰하나 빡빡한 것이 싫었다.
동양 윤리를 강의하는 다카다 교수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서양 문명의 몰락과 절망, 동양의 정신 문화의 세계사적 의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민족이 각기 그 응당한 자리에 서게 하기 위해서 자아를 멸하여 대의에 살아야 한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인간 존재의 대원칙이다." `현`은 순간 불쾌하였다. 거기에는 평화적 시위의 군중에 총탄을 퍼부은 일경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할아버지와 같은 무원칙적 순종의 인생을 요구하는 강요가 있었다. `현`은 어느덧 자기 손이 들려지고 질문을 하고 자리에 앉으면 자기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공연히 충동을 받고 발끈하고 일어선 자기의 멋이 싫어졌던 것이다.
일 년 뒤, 일군 당국은 젊은 학생들에게 단기간의 훈련을 베푼 후 전열에 배치하는 안을 세웠다. `현`의 전쟁 참가란 아무런 의미도 없어서 고향에 돌아와 외조부뻘 되는 집으로 도망을 갔다. 이 주일 후 형사의 방문을 받고 기한 넘은 지원서에 이름을 써 넣어야 했다.
다음해 봄, `현`은 북부 중국에 파견되는 노병들 가운에 섞여 있었다. 어느 날 밤 보초를 서다가 틈을 타서 도주하였다. 만주에서 헤매던 `현`은 1945년 9월 중순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8.15를 당하고도 절실한 해방의 뜻을 느끼지 못한 현 모는 `현`이 돌아온 이 순에 남다른 해방감을 느꼈고, 고 노인의 경우 8.15는 쌀 공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다음해 `현`은 교장의 간청으로 여학교 교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회의 혼란과 학생들의 동요로 학교도 혼란스러웠다. 교장은 일부 학생들의 조그만 정치적 소동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 교원에게 사건의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말았다. 직원 회의 때 시치미를 떼는 교장을 보고 `현`은 가슴속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교장에게 정면으로 대항했다. 그리고 나서 교장 보기가 거북스러워 사표를 냈다.
며칠 후, 혁명의 선두가 된 `현`의 옛 친구 연호가 찾아왔다. 그러나 `현`이 혁명에 대하여 좋은 반응이 보이지 않자, 연호는 멸시와 동정이 뒤섞인 눈으로 현을 쳐다 보았다.
다시 며칠이 지나 P고을 중앙 네거리에서 열린 이민 재판. 연호는 그 자리에 `현`을 불러 피를 보이고 그 반응을 보고자 했다. 첫째 번의 희생자, 그러나 `현`의 얼굴에는 공포를 찾아 볼 수는 없었고, 다만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흐르는 땀은 분노의 불길 때문이었다. 그의 입에는 찢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연호를 주먹으로 쓰러뜨리고 나서 보안서원의 소총을 나꿔 채고 빠져 나갔다. 그리고 31년 전에 아버지가 죽었던 부엉산 동굴 속에 몸을 감추었다.
이 글의 주인공 고현은 도피와 체념으로 살아온 할아버지의 인간형에서 참여와 저항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인간형으로 변화한다.
나는 그 시대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잘 몰랐지만, 이 글의 주인공 `현`이란 인간을 보면서 많이 혼란 스러웠을 거라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