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단절된 인간관계 서울, 1964년 겨울

단절된 인간관계- 서울, 1964년 겨울을 읽고(일신서적)
1년 전 형의 권유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당시에 형에게 들은 작가에 대한 정보는 작가 김승옥이 <서울, 1964년 겨울>의 지은이이고, 작가가 이 작품으로 동인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그리고 현재, 그 동안 절필했다가 24년 만에 다시 펜을 잡았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읽었다.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책을 읽고서도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한 동안 멍해지곤 했다. 때문에 여러 번 읽느라고 애를 먹었다.
??서울, 1964년 겨울…??, 제목을 보았을 때 선뜻 내용이 상상할 수가 없었다. 제목이 지극히 평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은 한국의 수도이고, 1964년은 미국이 우리에게 베트남 파병을 요청하기 시작한 때이고, 6?3 사태로 계엄령이 선포되었던 시기로 알고 있는데, 도무지 겨울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생략)

고 있었다. 작가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책의 내용을 생각할 때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결코 좋게 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결국 작가는 익명성 속에서 서로 단절되고, 이기적인 인간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하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이것을 파악한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가끔 인터넷을 이용할 때, 뉴스 기사를 보며 해당 기사에 대한 나의 생각을 짧게 나마 남기고는 한다. 그런데 그런 댓글(꼬릿말)을 남기면서,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은 채, 험한 말을 쓰곤 했다. 또, 모르는 사람들과 채팅할 때에도 서슴지 않고 심한 말을 쓸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상처받아도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글을 읽은 사람이 상처를 받던지 받지 않던지 나랑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에서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옳지 못한 일임을 알고 있지만, ??나랑 관계가 없으니까??하며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내가 마치 ‘안’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비단 이런 면에서만 ??안??이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5층 짜리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었는데, 그 후로 나는 점차적으로 ??안??이 되어 갔고, 지금은 거의 ??안??과 유사해진 것 같다. 세 동의 건물에서 내가 얼굴을 아는 집은 옆집뿐이다. 그나마 그것도 기숙사에 있기 때문에 옆집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파트의 어른들을 보면 인사는 하지 않고, 못 본 척하고 지나가기 일쑤이고, 잘 아는 사람도 어색해서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가 버린다. 또, 어린 아이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 도와주지 않고 지나간 적도 있다. 이렇게 나는 내 주변에 누가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내가 필요한 일만 하고, 나의 관심사만 신경 쓰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단절된 생활을 해 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정말??안??과 흡사하다고 생각하니 매우 부끄러웠다.
한편, 작가는 ??안??과 ??나??가 사내의 죽음을 보고 그냥 그 현장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으며 약간의 여운을 남기는 데, 이는 문제가 되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작가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우리가 직접 생각해 보기를 요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단절된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우리들은 이기적인 사고 방식을 고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에 ??향약??은 이런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예로 써 서로 사귀고, 나쁜 행실은 서로 규제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돕는다??는 향약의 네 가지 덕목은 공동체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고 개방적인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또, 농촌에서의 공동체 노동 조직들도 차갑게 단절된 인간 관계를 형성한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가령, 농번기 때 논의 일을 효율적이고, 단기간에 끝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두레??는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만약에 농민들이 남의 농사일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일만 했다면,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했을 것이다. 또, ??품앗이??도 개인끼리 서로 노동력을 교환하며, 서로 돕는다는 점에서 단절된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현대인들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웃 사촌??의식을 가지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작가가 우리에게 지적하고자 한 차갑게 단절되고 이기적인 인간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안??이고 ??나??이면서 동시에 ??사내??가 될 수도 있다. 갑자기 단절된 인간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모두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모습에서, 만약 내가 어려운 일에 처한다면 나를 도와 줄 사람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의식하지 못했지만, 책을 읽어보니까 나 자신도 ??사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에 눈앞이 아득해진다. 정보화 사회에서 점점 더 단절된 인간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들의 미래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정??이라는 따뜻한 한 송이의 꽃을 찾을 것이다. 겨울처럼 얼어 버린 우리의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더 이상 춥지 않게 해 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