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을 읽고 서울1964년 겨울을 읽고

서울, 1964년 겨울을 읽고...
1964년 겨울 주인공인 나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안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나는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후였기 때문에 감각이 다소 둔해진 인물이고, 대학원생이면서 부잣집 아들인 안도 주인공인 나와 마찬가지로 그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아가씨들을 보거나 아니면 명멸하는 네온사인들에 도취되기 위해서 거리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또한 명의 등장인물인 30대 중반의 서적 외판원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 괴로워하며 나와 안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싶어 하지만 둘에게 어떠한 심리적 도움도 받지 못하는
60년대의 이기주의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자살까지 하게 되니까 말이다.
안과 내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리를 옮기려고 했을 때 30대 중반의 서적 외판원인 남자가 동행을 요청하게 되고 중국 집으로 들어가 음식을 사면서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하고 …(생략)

으로 어처구니없었다.
정말 그를 살릴 마음이 있었으면 외판원남자가 같은 방에 투숙하자고 했을 때 같은 방에 들어가서 밤새 이야기를 들어주던지 아니면 술을 마시게 해서 잠들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들이 있었을 텐데 아마도 안은 그 남자가 귀찮았거나, 죽은 뒤의 뒷수습에 이리저리 따라 다녀야 하는 것이 귀찮고 자신과 단 몇 시간을 같이 보냈던 남자에게 그렇게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설 지문에서 방을 빠져나갈 때 안의 대화에서도 그런 점을 느낄 수가 있다. 내가 나가 사람들이 알고 있냐고 물었을 때
“아직까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 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그 남자를 죽게 놔뒀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이라도 있는지 옷을 입는 도중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기어 발 쪽으로 기어오는데 그 개미가 자신의 발을 붙잡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얼른 자리를 옮겨서 디디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둘은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멀어져 가게 된다.
이 소설은 특별한 큰 사건이 없이 우연하게 만난 3명의 사나이들의 비현실적인 대화를 통해 비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암시해 주는 것 같았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정확하게 나타내지 않은 것이나, 여관의 이미지, 안의 냉담함 등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들어내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근대적인 도시에서의 인간관계일 것이다. 어느 날 만나서 잠깐 관계를 맺었으나 그 순간이 지나가면 그뿐, 그 관계의 유지나 발전, 그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없는 삭막함..
지금의 사회도 소설 속의 상황들이 어쩌면 매일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사건들 중 아파트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한 달이 넘도록 이웃도 몰랐다거나 하는 그런 사건들을 보면 소설 속의 상황설정이 어쩌면 지금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사회가 발달하고 집을 나가지 않아도 뭐든지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도 한국인의 정,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인심 좋게 점심한 상 대접하던 시골의 넉넉한 인심들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간관계의 삭막함이 나에게도 찾아오게 된다면 아마도 삶을 살아가는 힘 중 반절쯤은 잃는 셈이 될 것 같다. 소설 속의 상황이 지금 우리 시대에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