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를 읽고나서 소나기를 읽고 나서

소나기를 읽고 나서
내 이름은 보라다. 참 우습게도, 내가 황순원 작품 중 `소나기`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극중 소녀의 대사 `나는 보랏빛이 좋아` 이 대사 때문이다. 뭐 물론, 그게 다일 수는 없지만 그 이유가 가장 크다. 이 짧은 대사 한 마디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이 나를 위한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하니 말이다. 이 소설엔 시종일관 소나기가 내리고 난 후의 촉촉하고 알싸한 향이 베어있다. 그리고 그 소나기는 왠지 보라빛이였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에로틱함. 나는 이 소설 전체를 감싸는 보랏빛의 어두움, 죽음의 심상 외에 다른 어떤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에로틱함`이다. 왠지 다른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이 작품 전체에 농후하게 깔려있다. 이런 분위기는 소년, 소녀의 조심스런 만남에서 시작되어 오두막장면에서 가장 고조되어 그 매력을 은근하게 그러면서도 강렬히 뿜어내고 있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것은 내가…(생략)

향해있지, 동경의 대상인 소녀를 향하지는 않는다. `너와 나는 다르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소년의 덜 익은 사랑엔 열등의식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그래서 자신의 정성스레 건네준 무를 비참하게 거절당했을 때에도 자신은 외려 그 행동에 과장된 동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아직 어린 송아지의 등을 타는 치기 어린 행위로서 인정받고자 하기도 한다.
하나의 꽃! 소녀는 소년에게, 흰 얼굴이. 분홍스웨터가. 남색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범벅이 된 하나의 꽃묶음으로 보이는 어린 여신이다. 이런 소녀는 여신의 최후를 맞이한다. 어린것으로서는 여간 잔망스럽지 않은 그런 유언을 남긴 채. 여신으로서는 제법 어울리는 이른 죽음이다. 소녀는 소년에게 이제 `소년의 꿈`으로서 기억될 것이다. 소설은 끝이 났다. 그러나 이 소설의 결말이 조금 더 있다면 이마 소년이 소녀가 죽을 것을 안 그 날, 소나기가 내렸을 것 같다. 그 전 보다 아주 많이- 그 비가 끝난 후, 소년은 어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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