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비를 읽고 소낙비

<동백꽃>으로 유명한 김유정의 <소낙비>를 읽고...
이야기의 줄거리는, 흉작과 빚으로 삶의 터전인 농토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인 춘호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가 산골 마을로 찾아든다. 춘호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노름과 아내의 매춘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쇠돌엄마는 춘호 처와 같은 천한 농부의 계집인데 동리의 부자 이주사와 배가 맞아 팔자를 고친다. 지난 늦은 봄 달 밝은 밤에 보름 계추를 보러 산모퉁이로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잠자리에 들려는데 황소 같은 이주사가 춘호 처를 겁탈하려 들었다. 춘호 처는 쇠돌엄마가 속곳과 버선 자랑을 할 때 속으로 자기도 잘했으면 쇠돌엄마처럼 호강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뒷산에서 밤마다 큰 노름판이 벌어지는 것을 안 춘호는 한몫 모아 서울로 갈 꿈을 꾼다. 그러나 밑천을 장만할 수가 없어서 그는 사나흘 밤이나 눈을 붙이지…(생략)

한다. 갑자기 남편의 태도가 돌변한다. 부부는 모처럼 나란히 누워서 서울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한다. 춘호는 이원을 가지로 노름을 해서 있는 돈을 깡그리 몰아 올 생각에 기뻐한다. 밤새도록 내리던 비가 아침에야 그친다. 춘호는 아내의 머리를 빗겨서 맵시 있게 쪽을 질러주고 공을 들여 삼아 논 짚신을 신겨 돈을 받으려 보낸다.

작품은 1930년대의 궁핍한 농촌을 배경으로 당대 순박한 농민들의 삶의 애환을 보여주고 있다. 작중 모든 비극의 원인은 궁핍한 현실이다. 김유정의 소설에는 농촌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해 주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동백꽃>이나 <봄봄>에선 마름과 소작인이라는 관계가 나타난다. ’소낙비<에선 자소작농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심지어는 빚까지 얻어 농촌을 떠나서 서울로 떠나려는 춘호를 통해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돈’은 등장인물들의 행동 양식 중심에 놓여 있으며, <소낙비>에서의 인물들은 그것에 대타 적으로 맞서는 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 돈의 마련을 위해 결국 매춘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는 매춘 자체의 부정성을 모르고, 남편은 정조가 돈보다 귀한 것이라는 의식이 없다. 결국 무지에서 비롯된 윤리의 부재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물질적 가치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그와는 다른 윤리나 이상을 추구함으로서 겪게 되는 다른 소설들과는 차이가 있다. 작품의 춘호 부부를 보면 정상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독자의 기대나 상상과는 정 반대로 나아간다. 아내를 곱게 단장까지 시켜 매춘이 실패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춘호는 악한 성품의 소유자가 아니라 위에서 말한 대로 어리석고 무지한 것이다.
춘호 부부가 처해 있는 상황은 굉장히 비극적인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약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작품의 바닥엔 ‘아이러니’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춘호는 노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를 판다. 이러한 잘못된 사고를 통한 황당한 행동은 독자들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해학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나 <동백꽃>을 중학교 때 읽었을 땐,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점순이가 왜 저러지?’, ‘춘호 처는 왜 저러지??’ 그러나 많은 해학적인 작품을 접하고, 깊이 상상하며 비로소 이해가 된 것이다.
춘호는 노름을 하기 위해 처에게 매춘을 재촉한다. 처는 아무 반항 없이 행하게 된다. 춘호는 처를 매질을 해 가며 매춘을 보내고, 처는 남편에게 맞고 사느니 몸이나 팔아서 편하게 살겠다 생각한다. 이런 태도는 보편적인 윤리적 사고에서 상당히 어긋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이런 윤리적 사고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의식 결여라는 둥 하는 소리가 나오기엔 삶의 무게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현대 사회의 무너진 성문화의 현실을 예견한 것 같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 몸을 사는 사람들.
춘호 부부 같은 어리석음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