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작가 알베르 까뮈는 「간부」, 「배교자」, 「말없는 사람들」, 「손님」, 「요나」, 「자라나는 돌」 이렇게 여섯 개의 단편을 「적지와 왕국」이라는 제목 아래 묶어 놓았다. 보통의 단편집에서는 여러 단편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단편의 제목을 따서 책의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까뮈는 이 여섯 개의 단편들의 제목과 전혀 다른 적지와 왕국이라는 제목을 이 단편집에 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섯 개의 단편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적지와 왕국이라는 제목과 연관성을 가진다는 얘기이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고찰해 봄으로써 적지와 왕국이라는 이 책은 물론 작가 알베르 까뮈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여섯 개의 단편들 중에서 특별히 「손님」이라는 작품이 적지와 왕국이라는 제목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손님」은 보이는 것이라고는 자갈밖에 …(생략)

부터 끊임없이 물과 식량을 공급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마치 왕이라도 되는 듯이 여기고 그가 살고 있는 이 고장을 그의 왕국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 고장이 아닌 그 어느 곳도 그에게는 적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p.101～102)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에게 있어서 적지와 왕국에 대한 개념은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또한 그의 왕국에서 적지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고장은 본래 이렇듯 살기 어려운 곳인데 그곳에 사는 인간들끼리의 문제 또한 간단치는 않았다.` (p.102) 바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 때문이다. 그에게 아랍인의 후송을 부탁한 헌병 발뒤시는 그가 오래 전부터 알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그의 신념에 따라서 발뒤시의 부탁을 한 마디로 딱 잘라서 거절한다. 그것이 정부의 명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난 이 사람을 넘겨주지 않겠어요." (p.108) 이 한마디로 그는 아랍인의 반발이 예상되는 이 고장에서 그의 조국 프랑스를 배신한 꼴이 되었고 발뒤시를 모욕하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그의 신념을 지키려 했지만 아랍인을 놓아주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 다뤼는 한 번 더 회의하게 된다. 칠판에 `너는 우리의 형제를 넘겨주었다. 그 대가를 치르리라.` 라고 아랍인들이 그를 협박하는 글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 광막한 고장에서 그는 혼자였다.` (p.120 ～121) 정말 그러했다. 그는 이 고장을 그의 왕국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왕국은 또한 그의 적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뤼는 왜 그 아랍인에게 선택권을 주었을까? 그는 그 아랍인을 종교와 인종에 상관없이 하나의 인간으로서 받아들였다. `이 사막에서는 다뤼도 그의 손님도 그 어느 누구도 다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도 손님도 이 사막을 벗어나서는 진정 살 수 없다는 것을 다뤼는 잘 알고 있었다.` (p.110～111)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아랍인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포승을 풀어주고 저녁식사를 대접해주고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총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왕국은 누구나가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사랑하면서 한 평생을 살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러한 왕국을 실현할 수가 없다. 그 아랍인은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왕국에서는 또한 살인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문득 다뤼는 이 사람에 대해서, 모든 인간들에 대해서, 그들의 악의와 지칠 줄 모르는 증오, 피를 보고 싶어하는 광기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p.106) `이 사나이가 저지른 바보 같은 범죄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랍인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그를 불편하게 만든다. `또한 이 존재가 거북스러운 것은, 지금의 상황에 있어서는 거절할 수밖에 없는 친밀감을 강요하기 때문이었다.` (p.115) 결국 그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아랍인에게 그 선택권을 주기로 결심한다. 그의 왕국을 지향하자면 그의 죄를 용서하고 그를 유목민에게 보내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는 살인이라는 큰 범죄를 저질렀고 그렇기 때문에 그를 또한 유목민에게 보내는 것도 그의 신념에 벗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늙은 헌병 발뒤시의 입장에서 적지와 왕국의 의미를 찾아보자. 발뒤시는 헌병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다. 명령에 따라 그 아랍인을 다뤼에게 데리고 왔고 다뤼에게 그 아랍인을 탱기까지 후송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 아랍인을 포승으로 묶으려고 하고 다뤼에게 권총을 주어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또한 다뤼가 죄인을 인계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죄인을 인계하였다는 서류에 서명해줄 것을 요구한다. (p.107～109) 하지만 이런 그의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모습이 그의 다는 아니다. "나도 좋아서 하는 건 아냐. 사람을 밧줄로 묶는다는 건, 여러 해 동안 해온 짓이지만 아무래도 익숙해질 수 있는 짓은 아닐세. 그래, 부끄러운 짓이야." "자네를 고발할 생각은 없네." 이렇게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주는 것이다. (p.108) 여기에서 우리는 발뒤시 역시 다뤼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왕국을 꿈꾸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랍인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현실적 상황과 헌병이라는 그의 위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랍인은 왜 스스로 탱기로 가는 길을 택했을까? 인간은 누구나 왕국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분명히 아랍인은 그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탱기는 단순히 왕국이 아닐 뿐만 아니라 명백한 적지이다. 탱기에 가게 되면 그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거나 심한 경우 사형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가지 현실적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했던 앞의 두 인물 - 다뤼와 발뒤시 - 와는 달리 그는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었다. 그를 놓아줬던 다뤼가 다시 그를 신고할 일도 없을 것이고 남쪽을 택하여 유목민을 만나기만 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법에 따라 그를 잘 보호해 주었을 것이다. 작품에서 까뮈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놓지 않고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다만 우리는 112p에서 114p까지 이어지는 다뤼와 아랍인과의 대화를 통해 아랍인이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고 단순히 도망칠 기회가 주어지거나 친구들에 의해서 구출되었다면 당연히 도망쳤을 그가 그에게 선택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 탱기를 향한 것은 아닐까...
「손님」에 등장하는 세 사람 - 다뤼, 발뒤시, 아랍인 - 을 통해서 우리는 개인에게 있어서 적지와 왕국의 의미는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춤을 잘 추는 사람에게는 나이트 클럽이 왕국이겠지만 춤을 잘 못 추는 사람에게는 적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적지를 떠나서 왕국을 지향하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 여건이나 신념들 때문에 왕국을 선택하지 못하고 오히려 적지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지와 왕국」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단편들은 미처 다 읽지 못했지만 아마도 까뮈는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적지와 왕국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순적인 인간의 삶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적지와 왕국」이라는 제목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번 과제를 수행하면서 적지와 왕국이라는 제목이 얼마나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것 같다. 내가 지향하는 왕국은 어떤 곳이고 나는 지금 얼마나 현실적 여건을 잘 수렴해서 왕국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가 다시 한 번 반성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