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아주 오래된 농담

‘아주 오래된 농담’
처음 이 책에서, 누구나 그렇듯이, ‘농담’에 관한 책이 이번 도서 목록에 들었던 점, 또 ‘박완서’ 많이 들어본 작가가 지은 소설의 제목이 ‘농담’이라는 것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사람의 크나큰 실수라 했던가. 이 농담거리■ 웃음에 대한 해학 ■ 옛 선조들의 풍자에 대한 이미지를 벗어난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는 또 한번, 나에 대해, 아니, 인간의 이런 성급하고도 주워 담기 힘든 실수에 대해 다시 한번 두 손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불현득, ‘호밀밭의 파수꾼’에서와 비슷한 상황이란 것이 또 한번 생각을 스쳤다. 내가 처음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을 때, 나름대로 처음 책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호밀밭에서 어떠한 일을 하는, 그 일을 전직으로 삼는 한 인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동경과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홀든이 그저 사회에서 보았을 때 평범하다 할 수 있는, 퇴학당…(생략)

에 새기고, 그녀 생각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다가, 그녀와 소식이 닿고 난 뒤에 그녀의 집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한 중년 남성이다. 누가 이런 소설 속에서 자신의 이상향을 찾고,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만끽할 수 있겠는가. 나도 이런 소설속의 인물들에게 공감하는, 예를 들어 하루하루 현금을 잊지 못하고 혼자 달아오르는 영빈, 혹은 뒤에 나오는 오를 대로 오른 물욕 속에서 아들의 재산에 대한 유언 등의 권리를 빼앗기 위해 아들에게 암에 대항할 기회도 못 주게 하는 송씨 집안에게 일편의 이해도, 동정하는 점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 했듯이, 왠지 ‘호밀밭~’과 닮은 이 소설은, 이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그런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또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영빈의 그토록 집착하던 유현금. 장래 희망 조사서를 쓴 뒤 집에 가는 길에 “난 훌륭하고 돈도 많이 버는 의사하고 결혼할 건데. 약 오르지롱. 메롱~” 이 한마디와 메롱 하며 내밀은 혀로, 영빈과 광(영빈의 친구)에게 몇 십 년이나 잊혀지지 않는 여인으로 남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도 기억 못한 채, 돈에 찌들었던 유년~중년 시절을 버티고 이혼 후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사는, 돈과 권력과 세속에 구속받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또 그렇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생전 안 하던 요리에 취미를 붙여 심취해가며 지내고, 심지어 30년 만에 만난 동창과의 허다한 정사로 자신의 일상생활의 부족함을 채우며 한편으로는 영빈에게도 일상생활의 일탈을 맛보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반 유토피아적 인물... 영빈에게서 지금껏 다른 남자에게서 느끼지 못한 어떤 정에 이끌려 영빈의 아이를 배고 싶어 하다가, 자신의 임신능력에 한계를 깨닫는 한편 영빈의 아내 수경과 알고 나서부터 수경의 의식을 통해 어떠한 죄책감에 이끌려 영빈과 그냥 친구사이로 남기로 하며 직장을 구해 이사를 가는 등 나름대로 의 자기 관념에 투철한, 자유분방하면서도 때로는 순수한 여인이다.
작가는 이런 여인과 주인공을 통해, 타율적 인생의 허무함을 불륜으로 메꾸는 중년 남성의 한 이야기를 전하려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불륜 속에서 영빈의 아내와 수경의 사이를 통해 작가는 무엇인가 얘기 하려한다.

수경과 현금. 두 여인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상황을 갖게 된다. 둘 다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수경이 더 젊었고, 그로인해 수경만이 임신하게 될 수 있었다. 분명, 수경은 중*고생 딸 둘을 낳고 그 뒤로 아들 하나를 목적으로 맹목적으로 달려들어(서로 약속한 피임을 몰래 안 하고 관계를 가짐) 건강한 아들 하나를 순산할 수 있었지만,그 전에 자신에게 가해졌던 시어머니의 간접적인 압력과 남편에게서 느낀 무관심 등이 만들어 놓은 그녀의 행동(뱃속의 태아가 여자라는 이유로 두 번 낙태 수술을 받음) 그녀를 더 이상 한 정신적으로 건강한 여인으로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이 소설에서 현금은 말했던 대로 자유스럽고, 어떤 때는 순수하다 못해 둔해 보이기까지 하는(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는 남들보다 풍족하고 건강했으면 한 것이지, 절대로 빈약하거나 박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늙어버린 자궁은 현대 의학으로도 임신시키기에 거의 불능한 상태까지 가 버렸고, 자신의 자유분방한 의지와는 달리 자신이 사랑하는 영빈에게는 사회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기껏 해봤자 정부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 남자에 이렇게 완전히 판이하게 다른 여성 둘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 어찌 보면 아이러니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선, 내가 느낀 것은 이 판이하게 다른 여인들이 처한 상황의 결론은, 극단적이지만 문명에서 거의 완전히 벗어나든, 우리 한국의 풍토에 너무 찌들었든 간에 두 상황 모두 그리 좋은 점이 아닌, 사회의 관점에서는 그 시점에 둘 다 실패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수경은 아들을 낳았다는 자부심에, 현금은 새로운 직장과 고아들을 돌보는 데서 오는 만족감과 도덕적*윤리적 보람으로써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작가하기 나름이고, 아직 우리나라에서 이런 경우와 대비되는 경우는 많다. 현금 같은 여자가 불륜을 통해 임신을 할 수도 있고, 수경 같은 여자도 유산을 하거나 딸을 낳는 등 다시 한번 시어머니는 물론, 자신의 질책을 들을 만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박완서’ 이 작가의 의도는 아마 나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아직 겪지 못한 성(性 )과 임신에 대한 내용, 아직은 나에게 멀리 떨어진 상황에서 오는 느낌을 적는 것이 어쩌면 무리일 성 싶기도 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생각은 이랬었다.
이 책은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추가되어 전체적 내용은 다르지만, ‘영빈’과 관련되어 일어나고 있다. 영빈의 매제 송경호, 재벌그룹 Y의 회장의 장손으로, 영빈의 동생 영묘와 첫눈에 반해 결혼하고, 곧 Y그룹의 후계자가 될 인물 좋고 성격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폐결핵이 발전해 암이라는 병마가 되어 그의 폐를 물찬 벌집으로 만들어 놓아 더 이상 살아갈 가망이 없자, 송씨 집에서는 병원, 약물치료, 백일기도 등으로 경호의 상태를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경호가 죽자 곧바로 살던 집을 다시 매각하고, 영묘와 그 자식들을 다시 송씨 집안에서 살게 한다. 경호가 죽을 때까지 송 회장은 아들에게 암인 것을 알리지 마라 했는데, 영묘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충격으로 인한 건강 악화 때문이겠거니 하고 처음에 생각했지만, 결국 경호와 살던 집을 매각하고 시집에서 살게 해 자신의 두 아들의 위계질서를 확립해 주는 척 하면서 그 아들들마다 영묘에게서 길러지지 못하는, 완벽한 송씨 집안의 사람들로 키우려하는 그 집안사람들에 의도를 알아채 분노를 느끼고, 결국 영빈의 형 영준의 도움으로 아들들과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된다.
영빈도 자신의 매제와 관련된 일이고, 내과를 경영하다 보니, 송경호의 치료를 맏게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송씨 가문을 만나는 횟수도 잦아져 가며 그 집안에 대한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모멸감과 분노가 극에 치달아 오르려 한 적도 잦아졌다. 가끔 만나는 영묘에게서 송씨 집안의 구속 아닌 구속 등을 듣고 위로해 주다가, 결국엔 자신의 아들 장례식을 비디오로 찍어 슬퍼하는 기색 없이 거기 나온 고위 관료*인사들을 자랑하는데 여념이 없는 송 회장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환멸을 느끼고, 형에게 영묘 앞날을 부탁하는 메일을 보내고, 영묘는 영진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가게 된다.
이 소설속의 사실에 대해선 뭐라 할 말이 별로 없다. 오로지 느낀 것이라고는 돈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린 한 일가의 거대하고 추악해 보이는 가풍 앞에 스러져 가는 가련한 한 떨기 꽃 같던 영묘에 대한 가련한 동정이라고 해야 하나... 영빈이 아무리 현실적이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할 의사이지만 송 회장의 그런 물욕에 대한, 돈의 광신(狂信)에 대한 추악한 면모를 보고 화를 감출 수 없었듯이, 나도 아직 세상 물정 잘 알지 못했지만, 이런 것에 영빈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정도였다. 또 한편으로는 경호가 불쌍할 뿐이었다. 선택하지 못한 태어남 뒤에, 죽음마저 선택할 수 없이 하루하루를 무력하게 살다간 한 인간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 없었다.
또 한명의 사람이 끝 부분에 나온다. 스스로 치킨 가게를 차려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된 박성남. 자신이 경호와 똑같은 (성남과 경호는 관계없음)폐암에 걸린 것을 알고, 경호의 상황보다 훨씬 나아 약간의 치료로 암을 정복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박성남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병치레에 애써 차린 치킨 집마저 내놓을 수는 없다며 유언장을 쓰고 자살한다.
둘 다 암에 걸리고, 둘 다 죽었다. 사랑하는 가족도 있었고, 자신들의 직장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둘의 죽음은 판연히 달랐다. 부잣집에서 성대한 장례식을 거쳐 땅에 묻힌 송경호 보다도, 살 수 있는데도 굳이 의사의 의견을 묵살해 버리고 가족의 미래를 위해 자살해 버리는 한 인간 박성남이 왠지 더 빛나 보이고, 커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람에게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선택한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이 우리에게 어떻게 느껴지는가. 자신이 죽음과 싸워 이길 수 있는가. 은연중 작가는 소곤소곤 책 속에서 우리가 알아들을 듯 말 듯 한 소리로 속삭이고 있다. 지금 나는 이런 작가의 물음에 대답할 능력도, 마음도, 박 사장의 죽음이 숭고스러워 보이는 데 대한 나름대로의 이유나 변명 따위는 말하고 싶지도, 아니 알 수도 없었다. 사람 마음에 이유나 변명이 포함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습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나마 깨달은 것은, 영준이 자신보다 하층의 인간들에게 대했던 그 높다란 콧대를 잠재울 수 있었던 방법 그 자체가 돈에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10억이란 거금을 모교에 투자해 송 회장에게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한 영준, ‘돈 많은 사람 앞에서 돈 씀씀이로 그 돈의 액수를 밀어붙이는’식의 사고방식이 먹혀 들어가는 우리 한국, 그 속의 재벌 기업들.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재벌들에게 한 인간으로서 위세를 떨치는 대처방안이 ‘돈’이 된다면, 그 사이에서 지켜보는 우리들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모두 돈...돈...돈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송 회장을 억누른 영준에 대한 통쾌감? 아니면, 송씨 집안에서 풀려난 영묘에 대한 안도감? 나의 눈에 비친 이 소설의 어두운 뒷면은 이것이다. 모든 인간의 행복, 추악한 면, 권위 모두 우리 현실에선 돈이 그 가치의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영준이 행한 방법이 그 대상이 송 회장이었던, 다른 재벌 기업이었던,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영준에 대한 실망도 적잖이 있지만, 그보다는 이런 돈에 병든 사회에 대한 탄식이 묻어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글이다.
솔직히, 이 소설은 너무나, 너무나 현실적이면서도 필연적이다. 30년 만에 만나 급작스럽게 다시 친해진 영빈과 현금, Y그룹에 며느리로 들어가고 4~5년도 채 안돼 숨을 거둔 남편을 둔 영빈의 동생 영묘, 산부인과에서 만나 얼마 후 수경이 영빈 부인인 것을 알게 된 현금. 이런 것들이 모두 맞물려 하나의 소설을 이루고 있지만, 어딘가 어설프지 않게, 잘 짜여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것들 모두 왠지 ‘호밀밭~’과 유사하다는 느낌만은 어떻게 지워지지가 않는다. 또 한번의 판단 착오일까... 하지만 내 생각을 마음껏 적을 수 있는 기회에 한번 되는대로 적어 보겠다.
‘아주 오래된 농담’. 특이하지만 않았다면 소설의 내용에 묻혀 기억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아주 잠깐 언급될 뿐 그 이전, 이후로 나오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연관이 되어 버리는 한 줄. 셀린저도 그런 것을 의식한 것이었을까. 두 제목 모두 내 뇌리에 박혀 한동안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정말 두 책이 비슷하다 느낀 것은 두 주인공과 상황의 관계이다. 호밀밭의 홀든은 세 번 학교에서 쫓겨나고, 학생의 신분으로 술과 담배를 주저 없이 하는, 거기다가 동정인 상태로 여성과의 관계에 용감한 듯 하며 머뭇거리는, 사회에 대한 불안한 시선과 감상으로 저 멀리 삶의 돌출구를 찾으려 떠나려 하지만, 결국 자기 여동생의 순수함에 다시 이끌려 마음을 잡는 평범한 듯한 불량아(이기 이전의 인간) 이다.
분명, 홀든은 겉보기에는 불행하고, 안쓰럽고, 위험한 삶을 살고 있는 학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누가 여동생 피비의 손에 이끌려 다시 집에 가는 홀든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불량하다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나온 영빈은 어떠한가... 어릴 때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착실히 공부해 외길, 일탈 없이 의사가 되어 성공적으로 살고, 담배와 술은 입도 안대는 사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존경과 탈선이라고는 하지 않았던 자부심이 보는 사람들에게 그를 빛나게 비출 수도 있다. 홀든과 영빈은 여기서 사회에 대한 비판적 눈길과 혐오, 일탈을 꿈꾸는 것 말고는 완전히 상반된, 거울속의 비친 모습이다. 여기서 과감히 질문을 던져 본다.
“누구의 삶의 영위가 과연 정당, 혹은 바르다 할 수 있는가?”
분명 사람의 마음에 이유나 정당성, 타당성을 붙임으로서 그 사람의 인격의 정도를 판단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주관적 견해를 가질 자유, 두 대상을 비교해 보고도 싶은 것이 있을 것이 아닌가?
두 대립 인물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은 많다. 하나는 아직 어리디 어린 새파란 10대 이고, 한 인간은 50을 바라보는 위선적인 의사이다. 그 두 인물의 ‘나이’라는 것이 두 사람 사이의 차이점을 많이 자아내었지만, 결정적으로는 두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다.
홀든은 이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 멸시를 하지만, 피비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도와주고, 피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언제나 동생을 지켜보며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 인간인 반면, 영빈은 자신의 여동생을 위해주지만, 언제나 세상에 대한 탈출구로는 현금과의 성교, 혹은 현금이 만들어 준 식사를 우선으로 삼았다. 두 인물이 갖고 있는 정신적 안정의 세계는 확연히 다르다. 하나는 여동생을 위한 정성, 혹은 그 사랑 그 자체로서 삶에 대한 회의를 떨쳐내게 하고, 하나는 성교나 음식, 가끔 하는 진지한 얘기 말고는 이런 생리적인 욕구 충족으로 자신의 이상향(유토피아)에 빠져들고, 계속 갈수록 더욱 집착하게 된다. 분명 나이 탓만은 아니다. 나이가 어려도 홀든이 성에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고, 영빈이 가족들과의 화목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도 있다. 아마 작가 자신이 의도한 것인지 아님 우연인지 결말도 거의 반대로 맺어지게 된다. 홀든은 피비에 대한 행복한 감정으로 여동생과 함께 자신의 집에 가는데, 영빈은 치킨 박 (박성남)의 죽음 후, 고주망태가 된 채 현금을 찾아 갔다가 곧 현금이 일부러 잡아준 택시를 타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가게 된다. 이로써 느껴지는 것은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상태인지 어렴풋한 추측의 굳어짐이다. 하지만 이 비교를 어찌 홀든 만의 해피 엔딩이라 할 수 있으랴. 홀든이 집으로 가서 불량한 짓을 했는지, 영빈이 마음을 새로이 먹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 두 책의 비교로 인해 느껴지는 것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한 인간의 눈을 통해 본 세상속의 오만, 편견, 위선, 범죄 등 여러 가지가 녹아 있는, 하지만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 속에 은은히 퍼져 나오는 감동을 주는 두 책을 비교함으로써, 나름대로의 대조적인 모습 속에서 퍼져 나오는 그러한 가슴 찡한 느낌을 더 증폭시키기 위함이라 해도 될 것이다.
아주 오래된 농담. 이 책에서 현금은 농담을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들어서 즐거운 것’이라 하고 있다. 진짜 농담의 정의가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 혹은 농담과 이 말에 집합의 관계가 성립 하는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농담은 현금이 말한 것처럼 그런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의사가 암 환자에게 아직은 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다고 말 할 때도, 자기 자식 자랑에 진실이 아닌 내용이 대부분 포함된 말을 할 때도, 서로 비웃지 않고, 우기지 않고, 그저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보고 싶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는 거짓말이 악의가 없거나 나쁜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거짓말쯤은 농담으로 가벼이 웃어주고 마는 사람들의 세상, 그런 세상, 괜히 자신의 우월성을 뽐내기 위해 남의 약점이나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 과연 그런 세상이 오면 송 회장이나 영빈 같은, 위선 혹은 허영에 사로잡힌 한 불쌍한 인간의 모습이 과연 사라질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잘 모른다. 이런 농담에 익숙하지도, 앞으로 이런 농담을 할 건지도 받아줄지도 확실히 모르는 나에게, 아직 이 질문은 벅찬 것 같다.
“농담하나 해 드릴까요?”
오늘 아무하고나 같이 온종일 농담으로 잠시나마 이 세상을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