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 아홉켤레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를 읽고
제목을 보고 ‘구두’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아버지가 떠올라서인지 이 소설이 가장 호기심이 가고 끌렸다. 생각과는 달리 흥미로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깊은 깨달음을 주는 내용이라 더욱 알찼던 것 같다. 내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또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철없는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나’의 집에 권씨 가족이 이사를 왔다. 좋은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였지만 순경이 권씨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난 매우 커다란 배반감을 느꼈다. 순경은 권씨를 잘 감시하고 권씨 일가를 잘 봐주라고 `나`에게 말하였다. 권씨네가 우리 집에 이사왔을 때는 장관이었다. 재정상의 무리를 다소나마 메워 볼 생각으로 방을 하나 세놓게 되었는데, 권씨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것도 전세금 20만원 중 10만원…(생략)

중성을 느낀 ‘나’는 권씨 아내가 수술을 잘 받도록 해 주었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권씨는 그 날 밤 ‘나’의 집에 강도로 침입했다. ‘나’는 그가 권씨임을 알아차렸고 되도록 그를 안심시키는 쪽으로 행동했으나 정체가 탄로 난 권씨는 “그 따위 이웃은 없다는 걸 난 똑똑히 봤어! 난 이제 아무도 안 믿어!” 하면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자신에게 남겼었던 “이래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 라고 말하며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긴 채 행방불명이 되어 버린다.
이 소설 속 인물인 권씨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자존심만 강한 인간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권씨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르다. 권씨야말로 오히려 불쌍한 존재로 여겨져야 할 것 같다. 성실하게 일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결국 피해자가 된 권씨이기 때문이다. 산업화시대로 인해 소외되고 가난한 인생을 살아가야만 했던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을 대표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 속 ‘나’ 또한 권씨와 같은 불쌍한 존재로 느껴진다. 비극적 현실 때문에 인간의 이중성을 나타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가 처음에는 권씨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뒤늦게 권씨의 아내가 수술을 잘 받게 해 준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하지만 권씨가 이 사실을 모르고 “그 따위 이웃은 없다는 걸 난 똑똑히 봤어! 난 이제 아무도 안 믿어!” 라고 말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이 소설의 작가는 두 인물을 통해, 현실에서 소외되어 고통스런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려고 한 것 같다.
인간의 이중성을 보인 인물 ‘나’의 행동을 보면서 과연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을지 의문을 가져보았다. 아마 내 안의 두 자아가 충돌했을 것같다. 권씨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자아와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자아가 아마 다투다가 어쩌면 ‘나’와 같은 행동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자신있게 부탁을 들어줄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알았다. 슬픈 현실이다. 그래도 이 소설에 비추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는 인간인지를 깨달았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윤동주의 ‘서시’에서처럼 내게 주어진 삶을 소중히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책을 읽고 달라져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독서의 보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