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코완의 나무를 읽고

앤드루 코완의 나무를 읽고
그의 전작인 <돼지>처럼 리얼리즘이 뛰어난 작품이지만 <돼지>에 비해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편지부분이 재치있고 유쾌하다면 일상의 서술은 냉소적이고 건조하다. 도시의 노후지역 변두리로 경제적 하류층 분포지에 살고 있는 동거생활 5년째의 애쉴리와 제이. 아기의 탄생으로 두 동거인이 진짜 부부로 성숙하게 해주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특히 아기를 대하는 아빠의 애착이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밑바탕으로 온화하게 드러난다. 애쉴리는 어린 시절 남의 눈에 띄지 않던 얌전한 학생이었고 교사가 된 지금은 수업에 대한 열의도 없고 성실하지도 못한 비모범적인 교사이며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제이와 동생이외에는 매우 소심하고 내성적인 기질의 사람이다. 한 마디로 삶에 대한 열정이 지나치게 모자란 타입.
자기 신념이 뚜렷하고 책임감이 강한 제이는 그런 애쉴리를 `가정적인 …(생략)

께 담고 있지만 전자가 `희망`이라면 후자는 `좌절`의 의미이기도 하다. 나무 위에 집을 짓거나 주변에 캠프를 치고 시위를 하는 등 필사의 노력을 다하지만 결국은 공권력이 휘두르는 무력제압에 힘없이 무너지는 좌절은 내가 `돼지`에서 보았던 주인공 소년의 그것이 조금 변형되어 나타난 인생의 냉정한 슬픔이기도 했다. 부모로서의 책임에 비중을 두는 애쉴리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는 제이의 갈등은 완전한 정착민으로만 살아온 애쉴리와 히피생활에서 정착생활로 변화한 제이의 신념의 갈등이다.

네팔에서 과테말라에 이르는 동생의 여정도 새 봄에는 그가 형의 가정으로 합류할 것임을 예감케 하면서 `멀리 떠나 있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되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아이러니한 공감을 자아내게도 한다. 제이의 사회생활을 선호하는 남성적인 성격과 애쉴리의 가정적인 생활을 좋아하는 여성스런 성격으로 보아 곧 아내가 직장생활을 담당하고 남편이 살림과 육아를 담당하는 주부역할을 하는 새생활이 이 부부에게는 더 긍정적인 조화로움을 불러 올 것같은 예감이 든다. 정형화된 고정관념을 벗어난 부부역할의 변화가 그들의 우울증을 해소해 줄 것 같은 희망을 느껴도 될까. 소설의 제목이 <나무>인 것은 책 속에 등장하는 혹슬리 숲의 나무들이 그 숲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사람의 연약한 아기`처럼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어서가 아닌지. 비슷한 측면에서 이 책의 `나무`는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사이에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관계`의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아기`가 가정적 유대감의 매개체라면 `나무`는 사회적 유대감의 매개체로 작용한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