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양철북

양철북
인간이 기억하는 가장 아늑한 공간은 엄마의 자궁 속이라고 한다. 난 기억이 안나지만.. 또한 사람들은 물가에 가면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자신을 감싸던 양수의 느낌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능 속에 잠자고 있는 안정감이란 것은 사람이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에서 되살아나 더 이상 성장을 포기하거나 심하면 어머니의 뱃속, 자궁과 같은 편안한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은 이러한 심리로 성장을 멈춰버린 한 사람의 시각을 통해 현실을 보여준다. 자궁 속에서부터 엄마를 동시에 사랑하는 두 남자 중 어떤 이가 자신의 아버지인지로 혼란스러워 하던 주인공 오스카는 세 살이 되던 해 그의 생일날, 의도적으로 계단에서 떨어진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오스카는 자라지 않는 난쟁이로 살아간다.
여기서 …(생략)

유리는 모두 산산조각이 나고, 놀란 어른들이 행위를 멈추게 되는 것. 심지어는 성대에 이상이 있는지를 검사하기 위해 들른 병원에서조차 오스카는 아성을 지른다. 얼마나 사는게 힘겨웠으면 아성까지 지르는지.. 불쌍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오스카의 양철북이 두 가지 뜻이 맞닿아 있는 상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스카가 늘 가지고 다니며 시끄럽게 두드리던 양철북은 그 스스로가 선택한 세상에서 떨어지는 방법이었지만, 가끔 그가 세상에 간섭하게 되는 유일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어른들은 그의 양철북 소리를 시끄러워 하지만, 그의 아성으로 인해 오스카에게서 양철북을 빼앗지는 못한다. 오스카는 소리로 세상의 부조리한, 참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해 공격하고 그 소리의 힘으로 세상은 멈추기도 한다. 공격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최소한의 방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자기를 더러운 세상에서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였던 것이다.
오스카와 의사소통, 감정교류가 가능했던 사람들은 서커스단의 난쟁이들 이었다. 어머니와 얀이 죽고, 자신이 사랑한 마리아가 아버지의 정부가 된 후 집을 나선 오스카는 서커스단에서 자신의 무기였던 아성과 양철북을 웃음으로 되판다.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나게 되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 라던 서커스단 노인의 말처럼 오스카가 웃고, 희열을 느꼈던 그나마 행복했던 시간이 오로지 그 서커스단 속의 시절이었다.
사랑하던 여자가 죽고, 전쟁 속의 대세가 바뀌고, 집으로 돌아온 오스카는 마리아가 낳은 자신의 동생에게 세 번째 생일 선물로 양철북을 선물한다. 그는 그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인물이였다. 그것을 선물하는 오스카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했다.
<양철북>은 마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뉴스 같은 책이다. 그리고 그 북채는 세상에서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미숙아, 오스카에게 쥐어져 있다. 책장을 다 넘긴 후에도 양철북과 오스카의 눈에 비친 이중적인 세상의 모습은 쉬이 잊혀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지금도 양철북을 쥐고 성장을 스스로 멈춘 아이들이 움직이지는 않을까, 가끔 나를 향해, 세상을 향해 들리지 않는 아성을 지르고 있지는 않을까, 많은 생각이 남았다.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상영 되었는데, 과연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걸작이란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만든 잊지 못할 영화였다. 독일의 격동적인 시대를 담고 있지만, 세월이 많이 지나도 이 소설의 메시지는 바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난 이책을 읽으면서 문득 대구지하철 참사가 느껴진다. 거기서 난 이 책 양철북과 비교하여 두가지를 느꼈다. 그것은 바로 정신장애인의 슬픔과 그것이 비극으로 나타나는 안타까움과 인간 삶의 덧없음 이였다.
양철북. 이 책은 나에게 노벨상의 권위에 대해 엄청난 존경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 양이 방대하고 등장인물도 많아 읽으면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자주 읽기를 포기하고 싶었으나 읽고 난 후에 깨닫게 된 점도 그만큼 많았던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양철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