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을 읽고 양철북

양철북
이 작품은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서평을 보면 귄터 그라스 특유의 재치와 반어가 돋보인다고 하지만, 내가 귄터 그라스 특유의 재치와 반어가 돋보였는지 어떤지는 평가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읽은 그라스의 첫 작품이니까. 어쨋든 몇일을 걸려서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분량도 방대하고 -대략 천페이지가 넘는다- 번역의 문제인지, 원래 내용이 어려운 것인지 내용을 파악하는데에 다소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무엇인가 생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주인공 오스카는 때로는 일인칭의 관점에서 직접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삼인칭의 관점에서 묘사`당하기도` 한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상당히 혼란을 불러 일으키지만, 반면에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일종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스카는 겉모양은 어린아이이지만 속은 이…(생략)

습 뒤에 숨겨진 겉처럼- 사회의 퇴락에 일조를 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심오한 사상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을 얘기하겠다. 난장이인 오스카가 여러 여자에게 소위 `껄떡거리는` 장면에서 난 맘이 그리 좋지 않았다. 비단 이 책에서뿐 아니라, <고양이를 부탁해>란 영화에서 뇌성마비를 앓는 애가 자신의 소설을 타이프쳐주는 배두나를 좋아하는 장면에서도 맘이 불편했다. 불편한 이유가 전혀 없는데. 난장이나 뇌성마비나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고, 내가 이쁜 여자를 보면 마음이 동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러는 게 당연한 건데. 하지만 난 왜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좋아하는 장면만 나오면 맘이 불편한 걸까. 장애인은 장애인만 사귀어야 한다고 머릿속에 박혀있는 탓일까.
말로는 "장애인을 사랑하자"고 하지만, 난 장애인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라고 말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아닌, 그저 동정하고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머리와 가슴의 괴리, 그게 내 참모습이다.
그래서 난 장애인들이 특수학교에 격리되는 걸 반대한다. 어려서부터 내가 장애인들과 어울려 지내고,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면 이렇게 비뚤어진 인간으로 자라지 않았을 텐데. <오아시스>처럼, 그들의 삶을 그린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도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장애인이 얼마나 활동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 바, 대부분의 장애인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하철 역에서 장애인이 떨어져 죽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한국 사회는 그래서 야만적인 사회다. <양철북>을 읽고 했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