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 아주 오래된 농담

아주 오래된 농담
이 소설의 큰 주제는 3가지이다. 불륜, 재벌가와 평범한 집안, 남아 선호 사상, 더 세세하게 본다면 많아질 수 있겠지만 우선 나의 눈에 띈 것은 이렇게 3가지이다.
어릴적 빨간 능소화가 눈에 박혔듯 첫사랑 ??현금??이 가슴에 박혀있었던 ??영빈??은 30여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요요로운 ??현금??을 만나고 불륜에 빠져든다. 그러는 와중에 재벌가에 시집을 간 막내 여동생 ??영묘??가 자신의 남편이 암에 걸렸다며 도움을 요청해 온다. 그때부터 소설은 흥미가 더해간다. 저명한 병원의 과장으로서 그리고 사돈으로서의 자기를 믿지 못하고 ??영묘??의 사돈집 사람들은 이상한 무속신앙에 의지한다고 하며 병의 진행을 악화시키고 이상해져가는 사돈댁 때문에 ??영빈??과 ??영묘??는 혼란스러워 한다.
모든 것을 돈을 위주로 보여 지는 것을 위주로 하는 그 재벌가 사람들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쩜 저렇게 융통…(생략)

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두 여자가 같은 병원에 다니는 우연까지 겹쳐 ??현금??은 헤어짐을 통보한다. 세세한 모든 이야기 까지 하자면 끝도 없지만 여러가지 씁쓸한 주제들이 가슴속을 어지럽혔다. 모든 일들이 농담 같지만 진실인 내용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래저래 우리나라는 참 불공평하고 웃긴 세상이다. 결국 죽을 줄 아는 게 생을 아름답고 살맛나게 한다. 안다는 건 그렇게 좋은 것이다. 생전 안 죽을 것처럼 여기고 무진장 욕심을 부리는 것도 결국은 속아 사는 것이다. 투여되는 영양제나 생약이 몸을 보할지는 몰라도 환자 대신 병과 싸워줄 수는 없다. 싸울 수 있는 건 환자 자신뿐이다. 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싸울 게 아닌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 분하고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고 해도 그 또한 삶의 맛이다. 그게 가장 진미일 수도 있는 것을. 공포, 분노, 절망이면 왜 안 되나?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절망이 없기 때문이다.
박완서의 글들을 읽다보면 그녀의 나이를 읽다가도 새삼스럽게 그 삶의 연륜을 느끼게 되게끔 할 때가 있다. 아주 오래된 농담. 이 소설에 붙여진 이름표다. 그녀가 붙인 이 이름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는 관조적이라기보단 좀 더 참여적이지만 한 발짝 현실에서 물러나있다. 그 이름표에는 그녀의 연륜이 녹아있다.
불륜과 죽음을 둘러싼 기묘한 이중주. 이 암흑같은 이야기가 아주 무겁지 않게 서로를 탄력적으로 조율한다. 돈의 속물성이 감정의 무게는 물론 죽음까지도 무색하게 만드는 것에 있어 작가의 눈이 얼마나 냉철한지 알 수 있다. 더구나 이 모든 이야기가 아주 오래된 농담일 뿐이라고 자조적인 목소리로 읊조릴 수 있다는 게.
읽는 내내 조금 답답하고 비틀린 시선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소설. 그러나 곱씹고 곱씹어 미세하게 틈입된 일상화된 오래된 농담을 반추하는 일이 생을 돌아보는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세상은 불완전한 곳이다. 그러기에 예측할수 없으며 만족할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이곳에 완전이 있다고 말한다. 이때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참으로 오래된 농담이다. 어떤이는 이것을 믿고, 어떤이는 믿으려 애쓰며 살고, 어떤이는 알면서도 속이며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다`는 것만큼 분명한 진실이 어디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