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역사란 무엇인가>
지구가 탄생한 이래, 인류가 출현한 시기를 달력으로 환산하면 12월 31일 23시 02분이다. 58분이라는 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 풀리지 못한 의문이 많이 있다. 역사는 깊숙이 알아갈수록 새로운 의문점이 나타나고, 그리하여 역사에 대한 탐구는 수많은 역사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애초의 의문을 해소시키지 못한 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기 십상인 것이다. 사람들이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회고록을 쓰는 등 자신의 과거에 대해 기록을 남기듯, 인류도 암각화를 시작으로 그들의 생활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시작이다.
역사가들이 역사를 보는 일차적 관심은 사실에 있지 않다. 배러클러프 교수는 “우리들이 읽고 있는 역사는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하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라, 널리 인정된 일련의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정확하다고 해서 역사가를 칭찬하는 것은 잘…(생략)

워야 한다는 일련의 고정관념, 후궁은 질투심이 많다는 일반적인 생각 때문에 그와 같이 생각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예로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생각해보자. 국민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는 이유로 전국의 무당들을 억압하고 서낭당을 없애는 등 미신타파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오늘날, 무당과 서낭당은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이렇듯 시대가 바뀌면 평가 방법도 달라진다.
크로체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또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서 과거를 봄으로써 성립하고,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해석의 문제이다. 해석이라는 요소는 역사의 모든 사실 속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에 관한 자료를 읽을 때, 역사가의 자라온 환경과 그의 사상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가는 한 개인으로 다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사회적 현상이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사회의 대변인이다. 이러한 자격으로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에 접근하는 것이다. 즉, 역사가도 역사의 한 부분이다. 역사는 역사가가 행하고 있는 연구라는 의미에서나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의 사실이라는 의미에서나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며, 개인은 사회적 존재로서 이에 참여한다.
조선시대 사관들은 참 강직한 사람들이다. 세종대왕이 태종의 실록을 보여달라고 하였지만, 그렇게 되면 바른 기록을 남길 수 없게 될 것이라며 거절했다. 왕의 부탁도 거절할 정도인데, 뇌물 등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을 위인들이었을 것이다.
위대한 역사가란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또는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그들 역시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위에는 원칙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만일 이러한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일상 생활과 마찬가지로 역사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역사가는 과거의 경험, 곧 자기의 손에 미치는 한에 있어서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합리적인 설명이나 해석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골라내고, 여기서 행동의 지침이 될 만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왜?’라는 물음 이외에 ‘어디로?’라는 물음, 즉 미래를 생각한다.
역사가란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서 있는 사람이다. 역사가는 이것들을 분리할 수 없다. 정적인 세계에서는 사실과 자치의 분리를 선언할 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적인 세계에서의 역사는 무의미하다. 역사는 본질 상 변화이고, 운동이며, 진보인 것이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일상이라고 하지만, 그 시대에 큰 획을 그을만한 것은 역사라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나는 것과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파리에 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또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서 과거를 봄으로써 성립한다.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다. 오직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는 비로소 과거를 볼 수 있고,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