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서태후 연인서태후

연인 서태후
펄 벅이 쓴 「서태후」. 이 책이 나오는 순간부터 읽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서양의 침투가 동양으로 뻗었던 한참 시기에 중국을 다스렸던 여황제. 그 드라마틱한 소재를 다른 사람도 아닌 펄 벅이 썼다니, 이미 이 책은 역사와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서태후는 평생을 권력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간택에 불려가는 순간부터 권력으로 가는 길 쪽으로 삶의 방향을 틀었다. 영록과의 약혼이 궁중에서의 부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깨어진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의지로 이미 약혼은 부정되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입궁하여 천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어린 나이의 서태후. 그녀가 권좌로 나아가기까지의 과정은 권력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정석 그대로이다. 사랑을 포함한 다양한 인간적 면모를 거침없이 포기해버리는 것. 중요한 순간이 오면 잔인한 일…(생략)

리와 서태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이것이 그들의 잘못일까? 세상의 비밀을 꿰뚫어보고 자신의 역사적 위치를 넓게 조망할 능력을 기르지 못하고 권력의 정상에서 나이들어가야 했던 그들. 그들이 평범한 이들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평범하고 가난한 서민의 가정에서 평생을 보냈으면 어땠을까. 그들은 사치할래야 사치할 수 없고 이기적일래야 이기적일수 없는 고난하고 지루한 하루하루를 이어갔을 것이다. 자신이 사는 시대가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탈 때에도 영문을 모르고 그저 눈앞의 불편만을 처리하려 애썼을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오점을 찍는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의 죄라면 중요한 자리에 운명지워진 자로서 성숙한 의식을 갖지 못했던 것이라 할수 있을진대 이는 누구의 잘못인가? 그 자리에 운명지워준 신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 앉아 맡은바 성숙을 이루어내지 못한 한 개인의 잘못인가? 한 가지, 인물의 풍경에 중심을 맞춘 나머지 역사적 상황에 대한 부연묘사가 부족했던 것이 아쉽다. 그림으로 친다면 풍경화에서 인물만을 너무 또렷이 그렸다고 할까. 이 책만 읽고서는 정확이 어떤 사건에서 서태후가 어떤 역할을 담당했었는지를 거의 알아채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 작가는 시대와 운명에 대응하는 인간의 한 내면풍경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나`라는 한 개인은 역사와 맞닿아 얼마만큼 커다란 존재로 돌변할 수 있을까. 역사와 나의 만남에 대해서 생각한다. 권력에 대한 열망과 신념에 대한 열망에 대해 생각한다. 권력을 움켜쥘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나는 가차없이 고개를 돌리고 신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영원히 내 영혼을 노래해줄 역사의 길고 긴 안목을 믿고 당장의 부귀영화를 포기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품게 해주었으니 역사적 상황을 묘사 하지 않았다고 작가를 탓할순 없을 것 같다. 역사적 지식은 스스로 조사를 해가면서 볼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서태후라는 개인이 되어, 그 내면을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