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시 오후 네 시

오후 네 시
한 풀 꺾인 여름이 뒷심을 발휘해 태양볕이 작열하는 오늘 오후 두 시. 그녀의 소설 「오후 네 시」와 숙명적으로 조우했다. 어딘가 따스한 봄날의 목가적인 풍경이 떠오를 것만 같은 제목. 그러나 소설 속의 오후 네시는 고통이 시작되는 시간이였다. 주인공인 에밀은 고등학교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며 지극히도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지내다 퇴임하게 된다. 그의 곁엔 유치원 때 처음 알고는 지금껏 쭈욱 사랑하고 있는 그의 부인 쥘리에트가 있다.(아멜리 노통은 그녀의 소설들 많은 부분에서, 주인공의 사랑을 조금은 일방적이고 집착적으로 그려내면서 자신의 사랑 철학에 대해 우회적으로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주인공이 퇴임하기전에 같이 본 ‘우리 집’이라 가리킬만큼 만족스런 집에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지내고자 한다.
일주일의 행복한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후 네 시에 이 …(생략)

읽은 많은 책들, 언어학적 문학적인 자신의 입장에 대해 서술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가 오는 시간에 맞춰 산책을 가보는 등 몇 가지 수를 써보지만 그에겐 그야말로 무용지물. 결국 수일이 지나고, 주인공이 66년 동안 형성해온 성정으론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폭발한 것이다. 주인공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그를 밀쳐버린다. 그 후로 그는 주인공의 집에 발을 끊는다. 그가 발을 끊은 후 주인공은 행동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잠시간 파블로프의 개가 된다. 두 달에 걸친 그 일로 인해 오후 네 시만 되면 신경이 곤두서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이다. 스스로 베르나르댕 증후군이라 명명한 그 후유증은 시간이 흐르고 점차 회복된다.
얼마 후 그는 자살을 기도하지만 주인공의 발견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의 집을 방문하고, 그의 부인에 대해 생각하고, 그가 자신의 집에 지속적으로 방문했던 일을 떠올리며 그에겐 죽음만이 구원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 시킨다. 그의 자살을 막은 자신의 행동을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 이런저런 자신이 합리화한 언변으로 다시 한 번 그에게 자살을 종용해보지만 그는 다만 웃을 뿐이다. 그날 밤 주인공은 그의 웃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버리고는 그가 죽음을 원한다고 생각한 후 그를 죽여 버린다.(살인은 아멜리 노통이 소설 속에서 자신이 피력하고자 하는 바를 부각시키기 위해 종종 사용하는 장치중의 하나이다) 소설은 도입부에도 나왔던, 인간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모른다, 는 내용으로 끝맺음을 한다.
조금씩 옥죄어오는 긴장감을 풀어 헤치지 않고 무언가 폭발적인 반전을 고대하던 난 소설을 다 읽은 후 조금 허탈했다. 죽어버린 그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점이 많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씁쓸함만 더해갔다. 한편으론 굉장히 위험한 소설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깊숙히 숨겨져 있는 살인 본능에 대해 여과 없이 보여 냈기 때문에. 결국 아멜리 노통도 (김영하와 마찬가지로) 창작 속에서 살인을 함으로써 신에게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