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네시를 읽고 오후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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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7-21

오후네시를 읽고 오후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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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시를 읽고..

좀 더 극적으로 책을 읽고 싶어서 정확히 오후 네시가 되었을 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좀 우습지만 나름대로 낭만적인 시도에 어울리게, 이야기는 평화롭게 시작되었다.

이 책은 `에밀` 할아버지와 `쥘리에트` 할머니, 이렇게 두 노부부의 이야기이다. 에밀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행복해지려면 숨어 살라> 라는 속담처럼, 두 사람은 은퇴 후 평화로운 전원의 노후생활을 꿈꾸며 외딴 지방으로 이사를 온다. 이들은 <무욕보다 더한 만족은 없다>고 생각하며 <이름없는 행복>을 꿈꾸는 소박한 부부이다. 이렇게 갓 시작된, 그들이 꿈꾸던 평화로운 일상은 사랑이 넘치고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오후 네시가 되고 `그`가 찾아온다. 평화로운 이야기는 단숨에 블랙코미디가 된다. 정확히 오후 네시마다 벌어지는 황당하고 난감한 사건에 주인공은 점점 변해간다. `변한다`기 보다 `드러난다`고 하는게 적당할 것 같다. 이렇게 `그`는 오후 네시마다 찾아와 단답과 침묵만으로 주인공인 에밀 할아버지의 소심한 위선을 드러내주는 장치가 된다.

재미있고 흥미 진진 했지만, 참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겠지만, `그`를 대하는 에밀의 태도가 별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냥 답답하기만 했다. 문화의 차이일까? 우리는 솔직 담백한 직설의 문화가 아니던가. 이렇게 관계 사이의 위선을 비틀고 풍자하는 부분에서 전적으로 동감할 수 없었다.

노통은 왜 아무일 없으면 착하고 평화로울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할까. 마치 잔인한 실험을 하는것 같았다. 그녀의 캐릭터들은 씹기 위해 존재하는 듯 했다. 자신의 캐릭터들을 가엽게 만들고 조롱한다. 이는 `클레르 사건` 이후 점점 심해진다. 교사 시절 아끼던 여학생인 클레르에게마저 오해?를 품는 것을 보며, `이 주인공이 이제 미쳐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에밀`은 자신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혼란을 느낀다.

위선(자신안의 적)에 조롱을 보낸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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