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만 그러나 잊진 않으리 여자정신대 민족의 이름으로 쓰여진 구도적 소설

독후감 > 감상문
인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용서하지만 그러나 잊진 않으리 - 여자정신대 민족의 이름으로 쓰여진 구도적 소설.hwp   [size : 27 Kbyte]
  20   0   500   1 Page
 
  _%
  등록일 : 2010-07-21

용서하지만 그러나 잊진 않으리 여자정신대 민족의 이름으로 쓰여진 구도적 소설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민족의 이름으로 쓰여진 구도적 소설 「女子정신대」를 읽고
방가영
-용서하지만 그러나 잊진 않으리

挺身隊하면 일제 때 강제로 끌려나가 일본군의 위안부 노릇을 했던 조선 처녀들의 대명사이다. 그녀들에 대한 일본인의 짧은 글과 우리 신문의 몇차례의 단편적인 기사를 읽고, 정신대에 대해서 비로소 알게 되고 관심을 기울였던 사랑의 수래야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정신대란 ‘무슨 일에 자진하여 앞장 서 들어 신명을 바치는 무리’,‘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진해서 몸을 바치는 부대’ 라는 뜻이고 보면, 일본인들은 대동아 전쟁이라 했고 미국인들은 태평양전쟁이라 했던 싸움에 당시의 조선인들이 얼씨구나 좋다고 앞장서 신명을 바쳤을리 없었을 것이니, 그 명칭은 일본인들이 붙인 것에 불과 할 뿐이다.
즉, 1930년대 말경부터 일본은 자기네의 전쟁 수행을 위한 병력 보충책으로 지원병제다 징병제다 하여 조선의 젊은이들을 끌어다가, 나중에는 징용령을 내려 보국대 등의 이름으로 노역자 강제 징발까지 하였으니, 남자들은 탄광 등지에 여자들은 군수공장 등지에서 혹사를 당하고 죽어간 수가 수백 만 명이었다. 그들 모두가 〈정신대〉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가운데 일본군의 위안을 위해 강제징용 되어 희생된 순결 무구한 이 땅의 처녀들이 〈조선여자정신대〉였으니 그냥 〈정신대〉라 말하고 있는 것은 그 약칭인 것이다.
그녀들은 일본군의 〈위안대〉 또는 〈위안부〉라 망명되었는데, 1930년대 말경부터 강제 징용령을 내려 끌려간 수가 수십만 명에 이른데도 일본인들이 그증거를 남기지 않아 그 정확한 수는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 그녀들은 만주와 동남아의 일본점령 모든 지역에 분산 할당되어 하등동물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혹사당하다가 거의가 죽어 간 것이다.
책에서의 증언에 의하면 그 위안부들 중에는 일본인도 극소수 있었다는데 그 일녀들은 이미 매춘 경험자들로 돈…(생략)




용서하지만그러나잊진않으리여자정신대민족의이름으로쓰여진구도적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