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여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우주여행
* 요약
- 윤호는 서가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뽑아갔다.
아버지가 숨겨둔 총을 찾기 위해서다. 책을 뒤지다 예전에 과외 선생님이었던 지섭이 떠오른다. 지섭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친구의 손자이자 윤호가 희망하는, 아니 확실하게는 윤호의 아버지가 희망하는 A대학 학생이었다. 누나는 지섭의 남루한 모습을 거지같다고 혐오하며 처음부터 그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졌다. 반면 윤호는 지섭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날마다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읽곤 했다. 당시만 해도 윤호는 몇 달 뒤에 있을 대학 입시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그 책을 그다지 중요히 여겨보지 않았었다.
“나는 도도새다.”
도도새는 날개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은 나머지 날개가 퇴화해 버려 날 수가 없게 된 뒤 모두 사냥되어 멸종해버린 새이다. 지섭은 빈민촌에 곧잘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 우주인을 만났다는 농담에 윤호가 웃자 …(생략)

함께 특수 지도를 받았다. 거기엔 인규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는 품성이 나쁜 아이로 윤호를 퇴폐적인 세계로 이끌려고 유혹했다. 교사도 부모도 없는 날이면 인규를 비롯한 남자아이들은 몰래 방에서 음란한 사진들을 보곤 했다. 동아리엔 여자아이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은희라는 아이는 맑고 예쁜 아이였다.
“그런데, 그 우주인이 왜 내 답안지를 훔쳐갔을까?”
“우주인은....... 내가 떨어질 것을 미리 알고 있었어.”
윤호는 그 뒤 은희를 만나러 학원에 가고 동아리 모임에 갔다. 그러나 인규에게 끌려가 다른 여자아이들과 자게 된 윤호는 그만 은희를 피하려 했다. 예비고사일, 인규는 자기가 은희를 포기하는 대신 윤호에게 커닝을 하게 해달라 부탁했고 윤호는 이를 승낙했다.
이제 윤호는 책장에서 총을 찾았다. 막 자살을 하려는 찰나에 은희가 집에 찾아왔다. 인규와 있었던 일과, 자신이 답안지 카드에 인규와 같은 이름과 수험번호를 적어냈다고 고백한 뒤 윤호는 은희에게 총을 건네며 자신을 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은희는 총을 내려놓고 제 옷을 벗은 뒤 눈물로 범벅이 된 윤호를 꼭 감싸안아준다.


* 서평

작가 조세희, 그가 조그만 사무실 한 켠에 앉아 틈틈이 써내려갔다는 사실은 날 놀라게 만든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자세로 앉아, 온갖 상념은 우주 너머 여행보내고 지극히 아픈 일을 겪은 뒤 한 2년 쯤 지났을 때 다시 떠올려 보는 그 아픔 덩어리들- 딱딱하고 차가운 덩어리들을 왼손위에 올려놓고 만지작 거려보는 마음가짐으로 써야만 쓸 수 있는 소설인 것만 같았으니까. 온통 회색인 이야기들. 나는 그 중에서도,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인물, 윤호와 지섭이 등장하는 이야기, ‘우주전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윤호는 평범한 수험생이었다. 당장의 대학입시가 가장 중요했던 윤호에게 지섭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썩 좋은 세계는 아니다. 낙원구 낙원동, 난장이네 집은 비참함과 슬픔으로 얼룩져있다. 지상에서도 가장 슬픈 것은 자신의 생각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일이라는 지섭은 얼마 안 있어 쫓겨나지만 이미 윤호에겐 달나라 지도를 그려준 뒤였으리라. 점차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치스런 상황 속에선 난장이의 집이 떠오르고 인규와 같은 아이들의 추악한 모습들을 보다 못한 윤호는 이러한 현실을 참지 못하고 자살을 하려한다. 지금껏 당연한 현실이라 알고 있던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은 그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테다. 20년 인생의 배반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지섭은 말한 바 있다.
“나는 도도새다.”
날개가 퇴화하고 멸종당해버린 그 가엾은, 혹은 어리석은 새가 왜 자신이라고 했던 것일까. 그에게 ‘날개’라는 존재는 곧 그의 사상이나 생각이 아닐까. 분명 자신의 생각이 있으나 이 사회에선 읊조릴 수조차 없는 생각들. 어쩌면 도도새들이 살던 섬엔 굳이 날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풍부한 먹잇감들이 있었고 지섭이 살던 당시 사회에선 굳이 자신의 그런 생각을 주장하지 않아도 저 스스로 알아서, 무심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직업도 무엇도 없으면서 지섭이 자유롭지 못했던 까닭은 그에게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죽은 날개, 즉 죽은-사회에 의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상이 남아 무겁게 달려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가엾은 도도새는 순수하고 바른 정신을 가진 윤호에게 날개를 찾아주고 싶었던 것일테다. 윤호가 그 때까지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날개의 존재를. 이제 어린 생명을 띄고 퍼덕이려는 날개를 말이다. 이미 날개가 죽어버린 도도새에 비해 윤호에겐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날개만 믿고 펄쩍 뛰어오르기엔 벼랑은 너무 높고 바람은 너무 날카로웠다. 여기저기 상처입은 윤호는 그래서 총을 찾아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던 것이다.
마지막에 다행히도 은희가 찾아와 윤호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온전히 알몸이 되어, 어머니처럼, 우는 아이-윤호를 안아준다. 아무것도 걸쳐지지 않은, 결코 퇴폐적인 느낌 없이 순수한 살갗엔 상처 입은 윤호의 마음을 잘 얼러주었으리라.
짧고 건조하며 차가운 문체,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뭣 모를 감정들. 그것은 때론 분노이고 때론 머뭇거림이고 때론 고뇌다. 그처럼 암담하고도 긴 감정들을 이 짧은 단편 속에 모두 담아내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출판된 지 몇 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지극히 당연한 ‘현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또 비참하게 하지만 이 소설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죽지 않은 날개처럼 희망적인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