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을 읽고서 문학 독후감 운현궁의 봄을 읽고서

운현궁의 봄은 뮤지컬이나 드라마 ‘명성황후’로 인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역사소설이다.
이제껏 우리가 드라마나 뮤지컬 등의 다양한 매체로 접해왔던 ‘명성황후’는 그 초점이 제목 그 대로 고종 비 명성황후에게 맞춰져있기 때문에 명성황후의 숙적이었던 흥선대원군에 대한 고찰은 사실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왔고 그 비중 또한 명성황후의 숙적으로서의 성격만이 강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흥선대원군의 행적이나 성격 또한 단순히 국사책을 통해 알아왔던 몇 가지 업적이나 정책일 뿐이었다.
김동인의 소설 ‘운현궁의 봄’은 그러한 흥선대원군을 주인공으로 다루며 그가 집권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때문에 이 소설을 통해서 흥선대원군이 지도자로서 이룬 정책이나 업적 등을 자세히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운현궁의 …(생략)

어느 성현께서 돈받고 남을 잡아 가두라고 하셨습니까?”
학사는 즉시 대답하지 못하였다. 잠시 뒤에 머리를 돌리며 대답하였다.
“그게야, 그런 말씀은 안하셨지만 서원치고 안 하는 곳이 어디있나?”...
“어떤가? 내가 못할 짓을 했나? 다들 하는 노릇이고 하게 마련인 노릇을 나혼자 안하면 어리석은 짓이라네.” 『운현궁의 봄 190p 중 발췌』

이 대목에서 볼 수있듯 당시 서원의 권위와 그 남용은 극심했다.
또한 그 남용을 당연시 하는 사회풍조 속에 고통을 받는 것은 힘없는 백성들 이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대원군은 당연스레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백성을 수탈하는데 에는 일등공신인 서원을 먼저 철폐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서원의 남용과 더불어 지방관과 관청의 수탈 또한 만연했다.
그들은 서원이 이유 불문하고 무고한 자들을 잡아 부당하게 이익을 수탈했듯 온갖 가지의 수를 써서 민초들을 옭아매었다.

‘소관의 관내에 황발이라 하는 한 기특한 백성이 있사와 여사여사한 일을 하여 표창할 만하오니, 황발이에게 선공감 가감역(假監役)을 제수합시면 성은(聖恩)이 위에 없겠나이다.’....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이제 황발이는 ‘사람이 아니오 개’ 라고 도로 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뒤부터는 과부는 개에게 비단옷을 지어 입히고 가지고 다니며 자랑스러이 늘 다녔다.
....성은이 금수에게까지 미친 것이었다. 『운현궁의 봄 253p 중 발췌』

소설 속 개인 황발이에게 가감역이라는 명예직을 하사하고 대가로 이익을 챙기는 관들의 모습은 이미 그 남용과 부패가 극에 다한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는 관가의 도를 지나친 수탈 또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측면으로서 조명한다. 거대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제도를 꾸며놓고 그 위에 적은 녹봉을 내어주는 것은 배면으로 매관매직을 장려하는 일로 볼 수 있다는 소설 속 흥선대원군의 말은 지방관의 탐학이 단지 개인의 인성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제도의 결함에서 요인한 것으로, 단순한 종류의 것이 아님을 말한다.
이렇듯 부패할 대로 부패한 조선말의 현실을 타개할 극적 전환점이자 주체로서 작가는 흥선 대원군을 내세운다.
백성과 가장 가까이 지낸 윗사람이자 그 모든 참상을 실제로 겪은 자로서, 집권시 많은 현안을 내세우고 시행하는 대원군에게 있어 그가 겪었던 그 모든 고초는 오히려 그에게 근시안적 사고를 버리고 넓게 동시에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게 하는 안목과 시야를 주었다.
그런데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작가 김동인은 흥선대원군을 다소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도 대원군의 현안은 다소 일시적이나마 구한말 조선사회에 많은 혁신과 희망을 주었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경복궁 중건의 강제적 단행이나 원납전, 당백전등과 같은 화폐의 유통으로 인한 결점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작품 전반에는 흥선 대원군에 대한 예찬적 어조가 만연하다.
예를 들면 ‘조선 오백년 역사에 있어 조선을 사랑할 줄 알고 왕가와 서민 정치와 백성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지위를 참으로 이해한 단 한사람. 흥선대원왕 이하응’ 이라는 구절은 작가의 대원군에 대한 다소 주관적인 평가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작가의 선호문제가 아닌 작가가 살았던 시대나 사회상황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작가 김동인이 살았던 시대는 일제시대로 일본의 가혹한 탄압과 억압에 의해 우리민족의 혼과 얼이 말살되고 핍박받던 시기였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김동인은 민족의 자긍심과 자립심을 고취시키고 하나의 민족적 동질감을 이끌어내기위해 우리민족의 존경받았던 인물인 흥선대원군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을 썼다.
소설에 작품이 씌여진 시대나 그 상황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인 것이다.
또한 운현궁의 봄은 전반적으로 상승적 구조를 띄고 있는데, 자구책으로서 무뢰배같은 행동을하는 천대받는 흥선에서 점차 계략을 세워가며 미래를 준비하여 종당에는 당당히 집권의 패를 잡는 흥선대원군으로의 변모의 과정을 통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초반의 종친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수모와 치욕을 겪는 흥선 대원군이 종장에는 ‘운현궁의 봄’을 맞이하며 다시 화려하게 재기하는 것은 독자들에게도 시원한 해소감과 감동을 안겨준다.
사실 조선사의 많은 위인들 중에서도 작가가 특별히 흥선대원군을 소재로 삼은 것은 비단 그 인물의 영웅성외에도 그와 같은 대원군의 상황이나 행적이 그 당시 우리 민족의 운명과 닮아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흥선대원군이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꾸준히 이겨내고 버티어 결국엔 유달리 화려한 봄을 맞았듯이 우리민족과 나라 또한 그리되리라는 작가의 소망과 암시가 담긴 소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