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철의 `아홉살 인생`을 읽고 나서 아홉살 인생

어린 아이가 내게 준 깨달음
- ‘아홉살 인생’을 읽고 -
그리 큰 기대없이 보기 시작한 책. 샛노랗고 딱딱한 표지가 마음에 든 책. 소설 중간 중간 단순하고 만화같은 그림이 끼여있던 책. 이 한 권의 소설책은 내게 몇가지 깨달음을 주었다. 그저 학교에 학원에 다니느라 독서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책을 못 읽던 내가 두어 시간만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만큼 재미있기도 했다.
소설 속 주인공 아홉 살짜리 호기심많고 당찬 꼬마 ‘백여민’은 작가 위기철의 어린 시절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산꼭대기 집으로 이사간다는 부모님의 말에 언덕 위의 예쁜 유리의 성을 꿈꾸며 기대하던 여민이는 꿈꿔온 것들과 전혀 다른 판잣집 마을을 보고 적지않게 실망을 한다. 하지만 그만큼 꿈과 현실이 다름도, 사람은 꿈을 가져야 하지만 때론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런 여민이의 사건들과,…(생략)

버지는 안타깝게도 그것을 몰라서 자기의 아들까지 불행하게 만들어버린 듯 싶다. 주인공 여민의 짝궁 장우림이라는 여자아이는 도도하고 자지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며 허영심으로 똘똘 뭉친 아이다. 처음엔 여민이와 우림이라 서로 좋아하는 건 아닌가 추측했지만 곧 그들의 실갱이 같은 대화들이 나올 때 마다 그저 말씨름 정도로 ‘재미있게’ 보았다. 여민이는 우민이가 한달을 결석한 동안, 나름대로 우림이가 죽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슬퍼하고, 이별을 배운다. “죽음이나 이별이 슬픈 까닭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야...사랑하는 사람이 내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슬픈거야.”라는 여민이 아버지의 말은 여민이에게처럼 내게도 가슴싸한 공감을 주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 잃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들이 모두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 같다. 나도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어쨌든, 우림이의 결석 이후 둘은 훨씬 나은 사이가 되었다. 여러 가지 이것저것 많은 일들 -스스로는 ‘방랑’이라 칭하는 것들- 이 있은 후 여민이는 하루 결석을 하고 숲에서 지낸다. 후에 어머니는 열 개의 회초리를 준비하고 벌을 준다. 학교에 가지 않은 대신 숲에서 배운 것들을 말할 때 마다 회초리 한 개씩을 빼준다. 학교에 가지 않는 건 몹시 불안한 일이라는 것, 혼자 노는 건 따분하다는 것,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는 건 무척 괴롭다는 것 들 여덟가지를 겨우 댄다. 나머지 두 대의 회초리가 부러질 때까지 여민이는 매를 맞았다.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은, 정말 중요한 두 가지를 여민이는 배웠고, 내게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슬픔과 고통도 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과, 그것은 우리가 회피하려 들 때 도리어 더욱 커진다는 사실이었다.
정말이지, 말로는, 이론으로는 모두들 알고 있으니 사람들은 (나 또한) 어려운 일과 순간의 고통이 있을 때 그걸 피하려고만 하는 것 같다. 정의가 옳다는 것을 아나,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을 흔치 않다. 이젠 나도, 머릿속으로만 아는게 아닌,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여민이가 내게 일깨워준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은 피할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맞서 싸우지는 못해도, 피하지는 않는 그런 사림이 되어야겠다. 아홉 살짜리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내게 이런 깨달음들을 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 책은 내가 아끼는 책들 중의 한권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