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를 읽고 오상원의 유예를 읽고서

오상원의 유예를 읽고서
소설 유예는 주인공인 ‘그’가 6.25 전쟁 당시 인민군 포로가 되어 총살당하기 직전 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배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전후문학에 속한다. 전쟁에 휘말려 무의미하게 희생되는 인간들의 생명과 그로인해 파괴되는 개인적 삶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처참한 전쟁의 상황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이 소설에서 나 또한 적지 않은 씁쓸함을 느꼈다. 인간의 목숨이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가치라 여기는 나에게, 서로 다른 이념 때문에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우리 민족의 모습은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이 소설은 전후세대가 쓴 전후소설답게 전쟁에 대한 허무의식이 참 잘 나타나 있었다. 주인공인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며 머릿속으로 되뇌던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그 말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여러 의미를 가진…(생략)

려 이야기의 묘미는 더 줄었을 것 같다. 객관적 3자의 시점이 아닌, 한 인간의 시점으로서 죽기 직전까지의 미묘한 갈등과 죽음에 대한 허무함 마저 느끼게 하는 담담한 심리를 마치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한 시선으로 읽어보니, 마지막 순간 ‘그’의 죽음이 꼭 나의 죽음인양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이 주는 미적효과란 ‘한 인간의 심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독자인 우리들이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본다.
‘그’는 마지막 순간 죽음이란 그저 인간의 본연 그대로 싸우다 죽는 것뿐이라 하며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읊조렸다. 죽음이란 과연 무엇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무엇일까? 소설 속 죽음은 너무나도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바람에 나의 죽음조차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듯 조금 무서워졌다. 주인공 ‘그’가 죽은 뒤에도 평소처럼 이야기하고 순찰을 도는 인민군들의 모습을 보니 한 인간의 죽음이란 이렇게도 큰 세상의 흐름 속에선 별거 아닌, 그저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은 일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듯 죽음은 묘사되었지만,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나로서는 아마 끝없이 고뇌하고 갈등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은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나는 흰 눈이 가득한 곳에 그의 말마따나 아무렇지 않게 버려졌을 그의 죽음이 여전히 머리 한구석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건조하게 배어나오던 그의 말투. 그의 죽음 뒤에도 끊임없이 흐르던 시간. 따스하게 부서지던 햇볕. 그 햇볕. 눈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참 눈부셨을 것만 같은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