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를 읽고 유예…

유예
저자 : 오상원
출판사 : 두산동아
시일을 미루거나 늦춤..
유예라는 어휘에서부터 심심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작가 오상원의 작품 `유예`는 무력하고 건조한 나의 일상 속에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인민군에게 잡혀 죽기 직전의 심리적 갈등, 죽음의 무의미함과 전쟁의 비극성이 `그`의 의식 속에서 반복되며, 지나온 전투 상황과 패주 경로가 떠오른다. 북으로 진격하면서 몇 차례의 전투를 벌여 적의 배후 깊숙이 들어간 `그`의 부대는 본대와 연락이 끊어지고 만다. 간신히 여섯 명만이 눈을 헤치며 xx지점에 이르러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로를 횡단했을 때, 돌연 일발의 총성과 함께 선임 하사가 쓰러졌다. 그는 선임 하사를 부축하고 산 속으로 들어갔으나 새벽이 다가옴과 함께 선임 하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죽어 갔다. 그는 깊게 쌓인 눈 속을 헤치면서 남쪽으로 걷다가 …(생략)

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삶에 대한 집착을 상실한 인간의 허무한 모습이 아주 차갑게 다가왔다. 점점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아 가는 현실 상황은 인간으로서의 본질적 존재 가치를 망각하게 되는 순간을 초래한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을 어떤 결말로 이끌어 내는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었다.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 중국의 진시황제는 무병장수하기 위해 불로초를 찾아 떠나게 할 정도로 인간의 삶에 대한 집착은 집요하다 못해 끔찍할 정도이다. 이런 인간의 근원적 열정을 가볍게 꺼버리는 전쟁의 참혹성과 그 피폐함에 손이 떨려왔다. 인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도전 정신을 아는 인간이기에 극한적 상황에서도 끝까지 몸부림치는 모습은 인간 본성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전쟁은 인류가 몇 세기에 걸쳐 기반을 다지고 그 위에 쌓아 올린 모든 업적과 수고로움을 단 한번에 잿더미로 만들 뿐 만 아니라 인간의 무한한 삶의 욕구와 신선한 창조 정신을 퇴색시켰다. 많은 아픔을 겪고 나서야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인류는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최소한의 희생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상의 수많은 전쟁의 근본적 발단 원인을, 우리가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잃게 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면 인간 존엄성의 의미를 되살리고 평화의 참 된 의미를 되씹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