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를 읽고나서

소설이 다루고 있는 소재이니만큼 소설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무겁고 암울하다. 간결하게 쓰여진 독백체가 그 몫을 한턱 제대로 하는 같다. 그리고 문학시간에 배워 알게 된 ‘플롯’구성을 취하면서도, ‘플롯’을 강조하는 다른 소설의 일반적 경향과는 다른 것 같다. 주인공 ‘나’가 인민포로가 되어 움 속에 갇힌 긴박한 현실 상황을 설정해 놓고, 어떤 차례에 따라가 아니라 일주일 남짓한 동안 주인공이 포로가 되기까지의 일을 몇 장면씩 회상하는 형식이 다른 소설과 비교되었다. 특히 특별한 서사적 사건 없이 주인공이 총살당하기 직전에 유보된 한 시간을 중심으로 두서없이 나열한 점이 독특한 것 같다.
읽을수록 머릿속이 백지상태가 되어 책 속안에 빠져드는 느낌으로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기다가 갑자기 내가 만약 ‘나’처럼 포로가 되어 한시간의 여유가 주어진다면...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설 속의 ‘나’는 인생에 끝을 돌아보…(생략)

. 몇 사람이나 걸었을 흰 둑길은 그 위에서 몇 명이 죽어 나갔든지 간에 변하없이 하얗다. ‘나’는 이러한 흰 눈 속을 걸어가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흰 눈은 총살 직전의 나의 절망적 상황을 강조하면서 그 차가운 순백의 이미지는 전쟁으로 인하여 인간 생명의 중요함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차디찬 무관심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인상깊은 대목과 그 이유
“생명체와 도구와는 다른 것이오. 내 이상 더 무엇을 말하고싶겠소? 나는 포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확실히 호흡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ㅇ르 알았을 뿐이오. 나는 기쁘오. 내가 한 개의 기계나 도구가 아니었다는 것, 하나의 생명체인 인간으로서 살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으로서 죽어간다는 것, 이것이 한없이 기쁠 뿐입니다.”
명확한 차가운 음성이엇다.
인민군 포로가 되어 죽기 직전이 어느 병사가 말하는 태도가 죽음에 대한 두려운이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는데서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갔다. 또, 자신의 죽음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허무하지 않고 생명체인 인간이었고, 인간으로서 죽어간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하는 병사의 말에서 전쟁이 ‘한 사람’의 가치를 무너뜨려 인간의 존재가 하찮게 느껴짐에서 가슴이 아팠다.
몇분후면 화롯불에 손을 녹이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담배들을 말아피우고 기지개를 할 것이다.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일인 것이다. 의식이 점점 그로부터 어두워갔다. 흰 눈 위다. 햇볕이 따스히 눈 위에 부서진다.
사람을 죽이고도 무료하게 기지개를 할 수 있는 비인간적인 상황이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인간으로서 하찮은 모기 따위를 죽이고 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기지개를 핀다는게 있을 수나 있을까? 전쟁에서는 한 인간의 죽음이 보잘것 없게 느껴지면서 전쟁의비극성을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