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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길씨의 “장마”는 제목도, 내용도 생소했다. 이 소설의 제목인 “장마” 는 낱말 그대로 쉽게 끝나지 않는, 긴 기상현상이며, 천재재난이기도 하지만, 이념의 대립이 몰고온 오래된 지긋지긋한 가족의 불행을 상징할 것이다.
대략의 내용은, 화자의 집에 외가댁과 친가가 함께 살게 되는데, 외삼촌은 국군, 삼촌은 인민군 빨치산으로 나간다. 그러던 중 외할머니의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외할머니가 빨치산에 대해 저주를 해서 두 할머니사이의 갈등이 고조된다. 할머니가 점쟁이에게 아들이 돌아올 시간을 일러주자 할머니는 크게 상을 차려놓고 아들을 기다리지만 기다리는 아들은 오지 않고 구렁이 한 마리가 아이들에게 쫒겨온다. 구렁이를 쫒는 아이들을 보내고, 구렁이에게 돌을 던지려던 화자에게도 삼촌을 공격하는법이 어디있냐며 꾸짖으셨다. 무속신앙을 굳게 믿으시는 할머니는 구렁이를 보고 아들이[화자의 삼촌] 억울하…(생략)
의 아들들 때문인 것이다. 각자의 아들들이 둘 다 고통을 받고 있을때는 동병상련으로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역서 상반된 관계에 있고, 한 아들을 잃고나서 그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에게 저주를 보낸, 이렇게 가까워질래야 가까워 질 수 없는 사이인 두 할머니. 하지만 이 두 할머니에게도 공통점은 있었다. 바로 “무속신앙”. 구렁이가 나오는 대목에서, 두 할머니는 동시에 그 구렁이가 할머니의 아들, 즉 화자의 삼촌이라는 것을 느끼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구렁이는 “미신” 차원이 아닌, 혼란한 역사 속에서 돌팔매에 쫓기는 불쌍한 영혼과, 우리 역사가 치러야 했던 저주스러운 동족상잔의 비극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구체적 실치인 것이다.
또, 화자의 외할머니께서 구렁이를 보낼 때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태워 그 냄새를 맡게해서 보내는데, 이것은 인간의 숨결이 있어야 역사가 편안하게 숨쉴 수 있다는 작가의 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여기서 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역시 자식을 생각하는 모정 일 것이다.
할머니는 점쟁이가 삼촌이 돌아올것이라고 정해준 정시를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 하지만 그 전에 불안한 복선, 예를 들면 화자가 구렁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던가, 기름이 남아있는 잠명등이 꺼진다던가, 날씨가 않좋다던가 하는 것 들이 있어 걱정이 되긴 한다. 다른 가족들에게 밥도 먹지 못하게 하면서 까지 애타게 기다리지만 삼촌은 정시가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도 시간정도야 이쪽에서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가족들에게 먼저 밥을 먹으라고, 자신은 기어코 아들과 모자 겸상을 받겠다며 그날 내내 기다린다. 부모님의 마음은 그런가보다. 언제, 몇 시에 올지, 아니면 올지 않올지조차 확실히 모르는 자식인데도 꼭 올 것이라는 한줄기 믿음만 가지고도 몇 시간이고 기다리신다. 아마 몇 시간이 아니라 몇 날 몇 일도 기다리실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면서도 할머니는, 죽었다고 체념했던 아들이 돌아온다는 점쟁이의 말 그리고 “살아서”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면서 그 기다림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계셨을 것이다.
할머니뿐 아니라 외할머니에게서도 모정을 찾아볼 수 있다. 외삼촌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왔을 때, 장마가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빨갱이들 다 쓸어가 버리라고 저주를 퍼 부었다고 했다. 얼마나 슬펐으면 그렇게까지 하셨을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물론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의 모정은 외삼촌에게서 뿐만 아니라, 삼촌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먼저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아들을 잃었다는 슬픔을 알고있었기에, 점쟁이가 지정한 정시에 나타난 구렁이가 화자의 삼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자식과 같이, 사랑으로 졸도한 할머니를 대신해서 삼촌의 혼령을 달래주었기 때문이다.
구렁이가 되어 돌아온 삼촌... 삼촌은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통해 할머니의 체취,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편히 저승으로 간 것 일 것이다. 그 구렁이는 표면적으로는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화해의 매개체가 되어주었고, 속뜻 을 보자면 아마 우리 민족의 동질성 회복으로 인한 통일의 매개. 로 사용된 것 같다.
두 할머니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공동의 한을 품고 있다. 먼저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였기에 구렁이를 화자의 삼촌이라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할머니의 공통된 점, 바로 자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민속신앙이 바로 두 할머니의 화해의 통로였다.
두 할머니처럼, 이 소설에서도 나타내듯이 아직도 분단되어있는 우리 조국 역시 정치적 대안이 아닌 서로 아껴주는 마음을 가지고,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통해 해소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두 할머니도 서로의 공통점을 통해 서로 감싸 안아주고, 아픈 곳을 어루어 만져주었듯이 남한과 북한 역시 서로가 서로에게 낸 상처를 치유해주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준다면, 정말이지 통일은 그리 먼 미래의 일은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나 역시 친구에게, 주변사람들에게 말실수로, 행동을 잘못해서 수없이 상처를 주곤 하는데, 물론 상처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 되야 하겠지만, 내가 실수로 낸 상처는 내 손으로 보듬어 치료해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병주고 약준다”... 라고 하면서 않좋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진정으로 내가 한 일에 대해 사죄하고 상처입은 사람에게 사과해서 용서를 빌면 그 사람도 내 진심을 알아주리라.
마지막 장면에는 두 할머니 뿐만 아니라, 손자, 화자와 할머니가 서로의 손을 쥐며 화자는, 초콜릿에 넘어가 삼촌에 대해 말해서 할머니께 혼났던일에 대해, 할머니의 모든 것을 용서한다. 할머니는 화자의 외할머니와의 싸움도 화해하고, 화자와의 마찰도 화해하면서. 그렇게 임종을 맞이하셨다. 그즈음 부분에 “삼촌을 기다리던 그 짤막한 기간이 사실은 꺼지기 직전에 마지막 한순간을 확 타오르는 촛불의 찬란함과 맞먹는...” 의 대목이 가슴속에 깊히 남았다. 짧은 시간 인 데다가, 살아 돌아온 아들이 아닌, 구렁이로 환생해 찾아온 아들을 만났을 뿐인데도, 단지 그 뿐인데도 자식을 둔 부모는 한없이 행복해 했다. 정말이지 꺼지기 직전의 초처럼, 죽기 직전에 짧은 시간 이나마 자식에 대한 그리움,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찬란하게 불탔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아...곧 있으면 아들을 볼 수 있겠지”하는 부푼 기대감에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화자의 삼촌이 죽지 않고 돌아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만약 죽지 않고 돌아왔다면, 화자의 외할머니와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나는 마지막 부분에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로 끝맺은 그 부분이 이상하게 마음에 든다. 실제보다 더 길게 느껴질 만큼 힘든 하루였다는 뜻이겠지만. 뭔가 더 깊은 뜻이 있을 것 같고, 뭔가 여운이 남는 것 같은 마무리이다.
처음 읽을 때의 분위기는 빨치산이다 국군이다 뭐다 해서 어둡고 남북 전쟁에 관한 이야기로 즐비할줄 알았다. 솔직히 책을 읽을때만해도 남북의 전쟁이야기니 민족의 아픈 역사니 해서 쓰여진 책들은 이미 많이 접해보고, 들어봤기 때문에 또다시 지루한 마음으로 책을 읽게될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 그당시의 힘든 상황, 오늘날의 반성 등이 아닌, 무엇인가 인간적인.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끝 부분에서 뭔가 따듯하고, 정말 “지루했던 장마” 가 끝나고, 장마가 끝나고 나면 맑게 개듯이. 내 마음에 드리워있던 무엇 인가도 장마의 먹구름과 함께 개여 사라져버리는 듯 한 느낌이었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장마는.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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