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촌을 읽고 사하촌

사하촌을 읽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이 더운 계절도 다 지나가는 모양이다. 산책삼아 집 가까이 있는 절을 찾아갔다. 깊은 산중이 아니라도 고즈넉한 산사의 멋이 깃들여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부처님이 대웅전에 떡하니 앉아계시니 만인의 수다스런 입이 절로 다물어지는 모양이다. 한참을 번거로왔던 마음도 불상의 입가에 어린 염화미소에 절로 가벼워진다.
‘사하촌’이란 글자 그대로 절 아래 위치한 마을을 이르는 말로써,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절 소유의 논밭을 부쳐먹고 사는 소작인들로 이루어져있다. 소설 ‘사하촌’은 자비로운 부처님이 계신 절아래 소작민들의 처절한 고통소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쉬이 들리는데 피토하는 절규는 오히려 부처님의 귀에 닿기가 너무나 먼 것일까?
보광사 아래에 위치한 성동리는 보광사 소유의 논을 부쳐먹고 산다. 3년전 수도…(생략)

소리와 함께 성동리 농민들은 손에 손에 빈 짚단과 콩대 메밀대를 들고 모인다. 보광사 농사 조합에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세를 탄원하러 줄을 이어 떠난다. 그 줄 꽁무니를 따르는 아이놈들은 절 태우러 간다고 떠들어댄다.
사하촌 농민들은 일제하에서 권력과 지주의 수탈 아래 고통스런 신음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소설 초반에 나오는 개미떼들에게 물리는 지렁이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드러나며 절로 소름이 끼쳤다. 얼마나 고통받아야 이런 절망스런 모습으로 내려앉을 수 있을까. 지금 주위를 둘러보며 그때와 비교한다면 적절할까. 분명 시대는 바뀌어 일제치하에서 해방되어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해 있다고 자부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한 조국에서 살고 있지만 개미떼와 지렁이의 모습은 여전히 현실에 부합하는 비유가 아닌가 싶다. 가해자와 피해자,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용자와 노동자... 시대는 흘러도 수탈당하는 약자의 신음은 여전히 어디에도 널리 퍼져있는 것 같다. 힘겨운 노동을 못견뎌서가 아니라 정당한 보상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에 사람은 절망하는 것이다. 성동리 사람들의 마지막 행렬은 생존의 끝자락에 몰린 이의 마지막 저항의 모습에 다름아니다. 과연 누가 저들을 극한까지 몰아간 것일까. 현대의 우리도 성동리 사람들과 다를 바 없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