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외딴방
학기초 문제집을 사러 서점에 갔다. 필요한 문제집을 골라두고 서점을 한바퀴 둘러보는데 신간 소설에 새책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서점에 와서 그런지 못보던 책도 많이 있었고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수필집과 최근 소설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얼마전부터 읽어보라고 친구가 추천했었던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이란 책이 가장 가운데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유 시간도 꽤 있었고 조금은 두툼한 책 두께에 아예 서점 구석 바닥에 자리를 틀고 앉아 책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글체를 중요시 하는 나로써는 책을 꼭 읽어보고 사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작은 아주 편안했다. 노트에 휘갈겨 쓰는 낙서처럼 작가는 편안한 마음으로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의문을 내던진 채 글을 써내려 갔다. 물론 글을 편안하게 쓴다는 것은 불가능 할 듯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낀 것은 글 자체가 과장되지…(생략)

긴 가장 꺼내적기 힘들었을 법한 사건, 희재 언니의 자살이 있었다. 신경숙 그녀가 사는 외딴방과 가까이 살았던 희재언니. 서울에 올라와 갑갑한 외딴방에 살게된 실망감과 동시에 알게 된 그녀는 신경숙의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빨래가 잔뜩 널린 옥상에서 함께 놀이를 할 수 있는 상대가 되어주었다. 그랬던 그녀가 신경숙을 처절히 구석에 버려둔 채 떠나갔다. 시골에 다녀 오겠다고 경숙에게 방문을 잠가 달라 부탁했던 희재. 아무것도 모른 채 희재 언니의 방문을 꼬옥 잠가두고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경숙. 그리고 몇일 뒤에 나타난 희재 언니의 잠긴 방문을 따기 위해 애쓰던 그녀의 연인.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급히 연 희재언니의 방엔 숨쉬지 않는 그녀의 몸뚱아리가 있을 뿐이었다. 어린 경숙은 두렵다 못해 질려버렸을 것이다. 자신에게 웃어주던 그 착한 언니가 자신에게 시킨 일에대한 죄책감, 죄책감, 죄책감 그리고 원망. 그녀가 어릴 적 발등을 찍은 쇠고랑을 우물에 던져 넣었던 것처럼 희재언니의 사건도 저 멀리 밀어면 좋으련만 외딴방을 이사하고 큰오빠의 도움으로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잊었을 법도 한 일이건만 작가는 이 책을 쓰는 내내 이 사건에 대해 띄엄띄엄 늘어놓고 있었다.
작가 신경숙은 숨겨왔던 아픈 과거를 외딴방에 담아 우리에게 고백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을 지도……. 사람들 앞에 공개되는 것을 끔찍히 싫어하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이렇게 픽션도 아닌 논픽션도 아닌 소설에 담아 비춰내었다는 것은 큰 용기가 아니었을까.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그녀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참으로 가슴 두근거리는 벅참과 미어지는 슬픔과 넘치는 감동. 그 무엇으로 형용할 수 없는 소설속으로의 흡착력. 외딴방은 그러했다. 모든 사람이 숨기고 있었던 아픈 과거까지 다 드러내게 하고마는 마력이 있는 듯 했다. 그녀가 겪었던 순탄지 못했던 청춘은 나에게 한가지 꿈을 실어 주었다. 작은 곳에서 시작한 꾸준한 슬픔, 희망, 성공까지.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가 신경숙씨가 된 것을 보면 나는 외딴방이란 소설이 어지간히도 좋았던 것일게다. 넓지도 않은 외딴방에 참으로 많은 추억을 묻어두고 살던 그녀가 조금은 가벼워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고백을 마침으로써 한결 가벼운 추억을 지녔으면 한다. 그리고 이제 내 마음, 작은 외딴방에 채워 질 많은 추억들과 이미 채워진 추억들을 풀어가며 살고 싶다. 작가가 살아왔던 진부한 삶처럼 나 또한 이제 그 시작에 서있다. 나중에 내가 소설을 쓰게 되었을 때 그때에도 이렇게 편안 글을 써보고 싶다.
서점 구석 바닥에서 내리 4시간 동안이나 읽은 `외딴방`은 다 읽고 난 후에도 한동안 여운이 남아 일어서지 못했다. 그 두께가 무색하게 짧게만 느껴졌던 신경숙 그녀만의 이야기는 특별했고 특별했다. 그 책을 사가지고 나오는 내내 뿌듯했다. 오랜만에 접한 마음에 꼭 드는 소설이라 행복했고 그녀의 고백으로 용기를 얻은 내 자신이 행복했다. 가끔은 힘들고 지겨운 생활이 연속되더라고 결국은 이루어 내고 말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다시 그리워 질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외딴방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지금 내 옆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이 그리워 질지도 모르겠다. 그 때가 되면 나도 고백해야지. 나의 삶이 이러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