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읽고 장마…

장마
저자 : 윤흥길
출판사 : 민음사
전쟁이란 왜 있는 것일까? 왜 우리 나라는 동족 상잔이라는 비극적인 일을 감수하면서까지 625전쟁을 치러야만 했을까? 등등의 많은 것이 아직 나에겐 의문으로 남아있다. 가끔 TV나 신문을 통해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접할 때에 그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서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면 나 또한 너무도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북한" 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떠올려보았다. 그랬더니 두 감정이 동시에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중 하나는 적대감이었다. 그것은 차가운 것이었다. 왠지 모를 거부감이었다. 한 민족이라는 것은 둘째치고 전쟁터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황폐해진 한반도가 생각났다. 그 첫 번째 느낌이 너무도 강해서 두 번째 감정은 너무도 약하게 느껴졌지만 분명 무엇인가가 더 있었다. 그것은 따뜻한 것이었다. 친밀감이…(생략)

전사했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빨치산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이 소리를 듣고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보고 죽으라는 소리이므로 노발대발한다. 할머니는 외가 식구들을 내쫓으라고 난리고, 외할머니는 그저 죽은 사람처럼 완두만 까는 험악한 분위기가 계속 된다. 역시 전쟁이란 것은 한 집안을 이렇듯 한 순간에 비극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할머니의
아들이나 외할머니의 아들이나 모두 무사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할머니와 외할머니 사이에 다투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있는 가운데 마을에서는 빨치산들의 시신이 전시되고 누가 죽었네 하는 소문이 떠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친할머니는 삼촌의 안부가 걱정이 되어서 점을 보러간다. 그런데 점쟁이는 아들이 꼭 살아서 되돌아 올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할머니는 이를 굳게 믿는다. 물론 가족들은 빨치산 대부분이 소탕되고 있는 때라서 빨치산에 간 할머니의 아들, 즉 삼촌이 죽었을 것이라고 믿지만 할머니는 끝까지 아들을 기다리면서 식구들을 닦달하여 음식을 장만하고, 집 안팎을 쓸고 닦으라는 등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할머니의 이러한 행동을 지켜보면서 나는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이 이토록 간절한 것인지는 몰랐는데 여러모로 반성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할머니의 바램
이 꼭 이루어지길 바랬는데 결국 아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실의에 빠져있는 할머니, 그때 난데없이 아들은 나타나지 않고 구렁이가 아이들의 돌팔매에 쫓기어 집안으로 들어온다. 친할머니는 구렁이가 죽은 삼촌의 현신 이라고 생각해 졸도를 하고 집안은 온통 쑥대밭이 된다. 외할머니는 기절한 할머니 대신 이 구렁이를 삼촌 대하듯 한다. 구렁이에게 돌팔매질하는 아이들을 혼내고 외부 인들을 쫓아낸 채 자네 어머니가 자네를 맞기 위해 이렇게 준비했다며, 집안 걱정 말고 편히 가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구렁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고 마침 어떤 아낙네가 사람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로 구렁이를 쫓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외할머니는 누워있는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태워서 구렁이를 잘 달래자 구렁이는 감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와 대밭으로 사라져간다. 나는 솔직히 이 부분은 소설의 특성인 허구성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렁이라는 것은 우리 나라의 무속신앙인 `저주 받은 사람은 죽어서 구렁이가 된다`는 것을 반영한 것인데 현실적으로 갑자기 구렁이가 나타난다는 것이 거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기서 구렁이가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돌팔매질을 당하는 구렁이 자체가 일제 시대의 암울했던 우리 나라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는 외할머니가 했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신이 해야할 힘든 일을 사돈이 했다며 매우 고마워하고,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그 동안의 갈등과 미움을 풀고 마음을 터놓는다. 할머니는 일주일 후에 숨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장마가 그치게 됨으로써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즉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관계가 지금의 우리 남과 북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장마의 시작부터 불거진 이념적 갈등으로 서로 다툼도 많았고 힘들어했던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결말에서는 서로 화해하고 더욱 깊은 사이가 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나라가 지금은 이렇게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서 서로 경계하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전쟁의 위협 속에 있지만, 통일됐을 때에는 지금의 이 시련이 그 어떤 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또한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화해가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두 분다 각각 자신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남북간의 관계도 `한민족간의 결속`으로 지금까지의 지루한 장마를 끝내고 눈부신 햇살을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