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읽고

우리의 민족적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을 제시한 작품
나의 고등학교 모교에서 국어 선생으로 재직 중인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6.26에 대한 표어를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냈는데, 한 학생이 이런 표어를 만들어 왔다고 한다. `6.25는 무효다 다시 한번 붙어 보자`라는 표어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으며 나는 우리의 비극, 6.25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 각자에게 어떤 형태와 의미로 자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비극 6.25는 전쟁 세대인 노년층에는 `현실적 아픔`이었을 것이며, 전후 세대인 청, 장년층에게는 `단순한 역사 속의 아픔`일 것이며 이도 저도 아닌 전쟁의 아픔을 전해 듣기만 해 세대인 어린이들에게는 하나의 `단순한 전쟁놀이` 로만 이해되었을 것이라는 게 나의 견해이다. 절대로 되풀이 되서는 안 될 전…(생략)

, 외삼촌이 좋으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강요 받는 모습에서 타의에 의해 갈라진 우리의 민족적 비극에 대한 아픔을 더욱 극명하게 상징화 시키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주인공은 끝내 답변을 회피한다. 아니 답변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런 혼란스런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 대신에 좋은 쪽과 나쁜 쪽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바로 제시하고 있다. 좋은 쪽과 나쁜 쪽은 우리 민족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이상 그에 대한 답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끼고 오히려 외부의 힘에 의해 갈라진 민족의 분열을 어떻게 치료하여야 하는지에 역점을 더 두고 작품을 전개하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한 민족이며, 한 조상의 자손들인 이 땅 위의 후손들이 `화해`하는 모습을 그린 대목으로서, 외할머니가 국군인 자신의 아들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빨갱이 친삼촌을 위해 행한 `천도 의식`이었다. 전장 터에서 외삼촌이 분명 공산당과의 싸움으로 목숨을 잃어버려 공산당에 대한 증오가 굉장하였을 것으로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빨치산으로 들어가 죽은 삼촌의 혼령을 위해 천도 의식을 성의껏 치루는 장면이다. 단순히 외할머니가 사돈 집에 의탁해 살고 있는 것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행하는 천도 의식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 삼촌의 혼백이 깃든 구렁이를 위해 속절 없이 아들을 기다리다 혼절한 친할머니를 대신해 치성을 들이는 장면은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상처 입은 우리 민족의 화해의 모습을 담고 있었으며 분단된 현실이 제거되는 날 또 우리의 분열된 이데올로기가 한데 합쳐지는 날, 우리의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치유해야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 작품이었다.

다시는 회상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비극과 상처의 치유에 대해 그린 정말로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었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나는 솔직히 이문구, 이문열 두 분만을 이 시대의 참다운 이야기꾼으로만 생각했었다. 오늘 나는 나의 이런 생각에 일대 변화를 가하려 한다. 바로 `윤흥길 선생`으로 인해서이다.

아직도 우리의 아픔- 그렇게 지루했던 장마가 끝났다. 지극히. 지극히 평범한 한 가정 안에서 벌어진 일을 통해 나는 한국전쟁의 상처를 봤다. 혈연의 정과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 가족이기에 적군과 아군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서 ??삼촌??과 ??외삼촌??으로 표상되는 이념적 대립이 나타난다. 여기에 겹치는 것은 ??할머니??와 ??외할머니??로 표상되는 혈연관계의 끈.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담담히 사건을 묘사해내는 화자는 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대응 논리에 혼란을 겪는다. 이 장마가 걷히면 소년이 한 차례 성장을 할 만큼.

내가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남한??의 교육을 받으면서 최초로 ??배신감??을 느낀 것은 <태백산맥>을 읽으면서였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이승복 기념관 - 은 무어란 말인가? 빨갱이, 간첩. 그들이 나쁜가? 아니, 그들이 누군가? 자본주의의 합리성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가르치는 교과서에서도, 6월 25일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표어, 포스터, 글짓기 대회에서도 내가 배운 것은,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고 간첩이나 남파하는 무지한 공산주의의 폐단과 폐해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세기의 천재였다. 그의 이론은 이론상으로는 완벽했다. 그 현실화 과정에서 다소간 모순이 드러났다고 해서 곧 포기 할 만큼의 사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물며 그를 따른 우리의 지식인은 바보였겠는가? 한 나라가 양분되었다. 1:3이 아니라 반반으로 양분되었다는 말이다. 두 개의 사상이 그만큼 서로 비슷한 만큼의 설득력을 지녔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그렇게 배운 적이 없다.

즉, 나는 한 가정 내에서 두 개의 이데올로기가 대립할 수 있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것을 이해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이 이데올로기 지향이라는 것의 무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구렁이를 달래 보냄으로서 ??장마??가 걷힌다는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윤흥길 선생님은 우리민족을 양분했던 두 이데올로기의 해체를 의도함으로서 오히려 인간 본질에, 삶의 본질에 접근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 낸 것이다.

참으로 아픈. 아픈 과거다. 동시대에 나타나 버린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피치못할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장마??에서의 상황은 시대적 아이러니로 넘겨버리기엔 너무나도 아픈 장면이었다.

결국 작가가 이 작품을 ??분단 해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서 그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외삼촌을 구렁이로 등장시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이유는. 아직 우리 땅의 허리를 동여매 숨통을 막고 있는 저 삼팔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