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짜장면

짜 장 면
`짜장면은 짜장면이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도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짜장면이라고 쓰면 맞춤법에 맞게 기어이 자장면으로 쓰라고 가르친다. 우둔한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나라 어느 중국집도 자장면을 파는 집을 보지 못했다. 중국집에는 짜장면이 있고,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이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는 어른들이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배워서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을 사주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이 책의 뒷면에 이런 글귀가 쓰여있다. 어른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아니 두려워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자신들의 생활을 그대로 물려주기를 바란다. 이미 정해진 틀 속에 모두를 가두려고만 한다. 이 책은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의 여러 부분 중에서도 특히 이 부분이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생략)

아예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가 버렸다. 숙제를 해갈 수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그려라."숙제를 못해 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술 선생이 말했다. 그래, 있는 그대로 그리자. 그 다음날 내가 그려간 바다 그림은 바로 이것이다. 하얀 4절지 위에 바다색깔로 온통 칠한 그림. 미술 선생은 책상 위에 놓인 내 그림을 보고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내 옆에 서 있는 미술 선생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대단한 찬사와 혹독한 꾸중 사이에서 나는 엉거주춤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찬사가 아니라 꾸중을 듣게 되면 나는 말하리라. 이 그림은 바다를 있는 그대로 그린 거라고, 바다는 너무 푸르고 넓어서 이 도화지를 뛰쳐나오려고 한다고.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미술 선생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는 한 손을 이마에 대고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찬사도 꾸중도 아닌 말을 탄식처럼 조용히 내뱉었다. "다시 그려 오너라. 좀더 구체적으로." 집으로 돌아와 나는 고민에 빠졌다. 바다를 좀더 구체적으로 그리는 방법을 생각하느라고 저녁밥도 걸렀다. 도화지 왼쪽 아래에다 바위섬을 그리고, 물결이 넘실거리는 해안으로 갈매기를 몇 마리 날려볼까? 포구로 깃발을 올리고 들어오는 어선을 그려볼까? 아니면 해수욕장의 흐니 모래밭과 현락한 여름 풍경을 그려볼까? 수많은 풍경들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내가 딱히 그리고 싶은 소재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그리는 대로 한심하게 바다를 그릴 수는 없었다. 상투성이 예술의 적이라는 것쯤은 그 당시의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계가 자정을 가리킬 무렵에야 마침내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다음날 내가 그려간 그림은 미술 선생의 말대로 좀더 구체적인 그림이었다. 4절지의 중간쯤에 수평선과 하얀 백사장…. 내가 스케치북을 펼치자마자, 덩치 큰 짐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한테 반항하는 거야?"무엇인가 넓고 두터운 물체가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미술 선생의 화물선만한 손바닥이었다. 눈알이 튀어나온다는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써야 할 것 같다. 실제로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왔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눈앞이 캄캄했다. 수런거리던 교실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잠잠해졌다. 내가 미술 선생이었다면,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오호라 , 수평선 위로 갈매기들이 많이도 날고 있구나." 그리고 까칠까칠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칭찬을 했을 것이다. "넌 벌써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어본 모양이로구나!" 그 미술 시간에 내가 그림에 대해 꼬치꼬치 설명하지 않은 것은 내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 내 실수를 침착하고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조숙한 아니가 아니었다.
여기에서 선생님이 "너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니"하고 한마디만 물어 보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기와는 다른 것을 보면 무엇이든지 부정하려고 드는 어른들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어른들의 틀에 박힌 생각들이 우리들을 억압하고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무한한 잠재력을 모두 앗아가 버린다. 이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그런 점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어른들이 없었으면 한다. 아니 내가 어른이 되었을때는 적어도 이 미술선생처럼은 절대 행동하지 말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