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을 읽고 죄와 벌

도서명 : 죄와 벌 지은이 : 표트르 도스토예프스키
출판사 : 현대출판사
‘죄와 벌’이라는 말은 참 간단하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 같다. 죄를 저지르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벌. 유죄냐, 무죄냐 따지기 위해 정말 열띠게 진행되는 법정의 재판 모습을 생각하면 숨이 막혀오는 것 같다. 그 긴박함과 초조함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책은 두껍다는 이유로도 혹은 그 심각한 제목에서 읽기도 전에 겁을 집어먹게 했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 만큼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헷갈렸고 내용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면서 나는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 변화에 커다란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이 책에 담긴 심오한 뜻을 조심스럽게나마 따져 보기도 하였다.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어처구니없는 살인을…(생략)

간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아프게 다가왔다. 어렸을 적엔 사람들의 장난으로 죽어 가는 말의 시체를 붙잡고 눈물 흘리던 순수하고 여린 마음을 가졌던 소년이 훗날에 잔인한 살인의 주범이 되다니. 게다가 살인의 증거물이 되는 옷가지들과 훔쳐온 금붙이들을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하며 기쁨의 웃음을 지어 보이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모습. 살인에 대한 후회나 반성의 빛은 조금도 볼 수 없었다. 전당포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도 사실이 들통날까 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의 모습에 씁쓸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한편, 이 책에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슨 것을 버리는 헌신적인 두 여인의 이야기도 숨어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팔아 돈을 벌어야만 하는 가엾은 창녀 소냐와 오빠 라스콜리니코프를 위해 사랑도 없는 결혼을 택하는 두냐. 그녀들은 살기에 급급해 마땅히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을 가진 인격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은 아예 접어둔 채 가족들만을 위한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들의 마음은 애틋했다.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자수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도 그 가엾은 인생의 주인공인 소냐였다. 자신의 생각과 법 사이에서 한없이 방황하는 라스콜리니크프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 주는 소냐. 그녀는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부드러운 힘을 가졌던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수를 하고 소냐의 동행으로 8년간의 시베리아 유형길을 떠남으로써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을 하며 새로운 삶을 그려 나간다. 죄에 대한 벌은 그렇게 끝이 난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벌이라는 것이 법에 의한 형벌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채찍질하고 괴로워함이 그 어떤 신체적 고통보다도 큰 벌이 아닐까? 또 벌의 끝이라는 것은 자신 스스로 자신의 죄에 대해 인정을 하고 반성함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고통스런 체벌을 받았더라도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반성이 없다면 그건 진짜 벌이라고 할 수 없다.
상처 받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 오늘날은 정말 많은 것 같다. 처음의 라스콜리니코프의 모습처럼 자신의 죄도 잘 파악을 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만 있는 것이다. 지독한 주위 환경 속에서도 마음 속의 평화와 따뜻함을 잃지 않았던 소냐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법에 의해서만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지은 마음에서 스스로 자신을 옭아 매는 것이 바로 진정한 벌이라는 것을 늘 염두해 두고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