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를 읽고

천국의 열쇠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종교를 가지고 절대자에게 삶을 의지한다. 종교는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고 새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 주는 것이 본연의 기능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수없이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다. 진정한 종교의 역할과 종교인의 자세는 어떤 것인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과연 천국의 열쇠는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플렌치스 치셤은 신교와 구교의 갈등으로 부모를 잃고 불우한 시절을 보낸다. 종교의 본질적인 목표는 `사랑과 관용`이다. 하지만 인류의 긴 역사를 살펴볼 때, 종교가 생긴 이래로 종교간의 갈등은 거의 항상 있어 왔다. 종교간의 대립뿐만 아니라, 종파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아직도 세계 도처에서는 그러한 갈등이 존재한다.
만약 신이 있다면, …(생략)

나는 종교가 신도 수를 늘리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알량한 권위 의식을 버리고, 그들의 높은 문턱을 가난하고 병든 이들이 쉽사리 출입할 수 있기만이라도 낮추기를 바란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는 많은 그림이 걸려 있다. 그 그림의 대부분은 가난해서 하루 벌어 겨우 사는 이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그림을 사서 성당에 기증한 것이? 한다. 열심히, 힘들게 번 돈을 그들의 신을 위해서 쓰는 것, 이것이 제대로 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종교는 종교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해서는 안된다. 종교의 주체는 인간이고,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것은 그로부터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얻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기 위함이지 결코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믿음과 종교라는 이름 아래 겪는 갈등과 다툼도 결국은 이를 간과해서 생기는 것은 아닐는지…….

프렌치스 치셤!

나는 그가 너무도 아름다운 인간으로 생각되었다. 관용과 겸양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한 발짝씩 걸어가서, 끝내는 종교가 쌓아놓은 오만이라는 성을 조금씩 허물어낸다. 안셀모 밀리가 종교 안에서 자신의 뛰어난 사교술을 가지고 세력을 넓혀 나가서 명예와 지위를 얻고자 했다면 치셤 신부는 오직 자신의 이상향을 향해서만 나아간다. 그렇지만 둘 중 어느 인간이 옳다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둘 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했기 때문이다. 치셤 신부가 종교의 본질을 실천하기 위한 내적인 면을 채우려 했다면, 밀리 신부는 교회를 짓는 등 교회의 세력 확장에 노력했다. 자신을 희생하고, 병들고 어려운 이들을 구원하는 것이 진정한 성직자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세계에서 치셤이 이상을 현실화하려면 밀리 신부의 수완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 치셤 신부는 지나치게 이상만을 지향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꿈만이 다가 아니라면 밀리 신부와 치셤 신부는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에 있을 때 최고로 빛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운명` 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치셤의 삶은 힘든 일들의 연속인 반면, 밀리의 삶은 모든 일이 너무도 잘 풀린다. 치셤은 그 모든 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받아들인다.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다. 인간의 삶이 신이 놓는 체스판처럼 이루어진다면 인간의 삶은 얼마나 허망하고 인간의 의지는 무시되겠는가!

하지만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다. 물론 양지 바른 곳에서 물을 듬뿍 흡수하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습기진 음지의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가 있는 것처럼, 인간의 환경 또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진다. 마치 우리가 스스로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환경을 딛고 일어서느냐, 아니면 주저앉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있다. 운명은 숙명 더하기 인간의 의지라고 한다. 결코 되어지거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바꿀 수 있는 여지를 포함한다. 결국 인간의 운명 또한 자기 의지의 소산인 것이다.

인간은 신 앞에서 더없이 나약하고 초라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우리 삶의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신은 인간에게 삶의 길을 안내하고 그 걸어간 길을 심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신이 인간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천국의 열쇠는 단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에서 최선을 다한 자,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 사랑과 겸양으로 인생을 대하는 자 모두에게 천국의 열쇠는 주어질 것이다.

"우리들이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이 만든 말일 뿐이며 단지 조물주에 대한 외경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 뿐이지요. 그러한 외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눈으로 하느님을 볼 수 있겠지요... 아무런 두려움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