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의 `광장`을 읽고 일반독후감 광장

<광장>을 읽고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사랑의 광장으로-
광장... 이름만 들어도 황량하고 멍한 느낌을 안겨다 주는 명사이다. 서점 책꽂이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 아니었다. 학교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한 책 제목이었고, 선생님께서도 읽어보기를 권장하신 책이었다. 그래서 한번쯤은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마침내 <광장>을 내 손에 넣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표지를 쭉 훑어봤다. 최인훈이라는 작가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작가의 표정에서 묻어나오는 느낌 하나하나 살펴보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찬찬히 첫 페이지를 넘겼다.
주인공 이름은 이명준. 듣는 순간 지식인의 이름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역시나 내 생각이 빗겨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지식인들은 복잡한 생각과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하다고 하는데, 역시 이명준도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도 답 언…(생략)

는 찰나에, 명준은 은혜라는 여인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그녀는 명준을 잘 보듬어 주며 그의 상처를 이해해 주려고 애쓰며 명준 또한 그녀를 믿어, 후엔 집착까지 하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월북한 후 신문사에서 일하는 명준은, 항상 자기가 보고 느낀대로 기사를 써 내려갔다. 하지만 그를 비난하는 신문사 사람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상에 물들어 버린 어쩔 수 없는 혁명쟁이들 뿐이라는 생각에 혼란에 빠진다. 현실을 직시하고 고쳐나가려는 개혁은커녕, 그저 인민들을 달콤한 말로 속여 마치 정말로 이상국가를 실현하고 있는 양, 유세 떠는 그들이 미웠던 것으로 보였다.
명준의 삶이 참 기구하게 느껴졌다. 남한, 북한 어느 곳엘 가 본들 자신이 원한 이상적인 사상과 이념을 지니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책을 통해 늘 보아왔던 현실에 대한 믿음을 져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아마도 책의 작가들도 그 책을 쓰면서 뭔가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었을 것이라 믿어진다. 나는 절실히 느껴보지 못했지만 남한의 자본주의 사상 또한 그리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사상은 아니라는 점에 치우쳐졌다. 빈부격차, 범죄, 인간성 상실 등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그것도 모두 민주주의라는 모래로 덮어버리고 있다. 이렇듯, 명준도 사상에 대한 갈팡질팡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만약 명준의 처지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무시로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명준은 굉장히 용감했던 것 같다. 두 사상을 모두 직접 체험하고 느껴 본 것. ‘어느 사상을 택하겠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중립적인 위치에서 두 사상을 견주어 보았으며 거기에서 회의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사랑하는 연인, 은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는 다시 한번 힘든 방황기를 갖게 된다. 장교로 남한에 내려와 있었기 때문에 포로로 잡힐 수 밖에 없었는데, 포로수용소에서 마카오로 가는 타고르호에서, 그는 밀실과 광장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였다. 나는 솔직히 밀실과 광장의 의미를 확실히 알지는 못하겠다. 명준이 말하기를 밀실은 자신만의 삶, 그러니까 사랑, 가족과 같은 개인적인 욕망과 행복을 위한 공간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것은 명준의 마음 속에서 그려진 공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광장은, 정치적인 이념을 띠고 있는 공공의 공간이다. 정치인들이 함께 모여 이념에 대해 논의하고 끝에는 그들의 행복을 위해 한 배를 타게 되는 대인관계의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씹어본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으면 피로 물들 수 있는 것 또한 광장이 아닐 듯 싶다. 하지만 명준은 이 밀실의 공간조차 이념과 사상에 의해 파괴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광장 또한 텅 빈 공간일 뿐이라고 여긴다. 플랜카드가 한가득 걸려있고, 깃발이 휘날리지만, 정작 혁명을 위한 피를 흘리는 자가 없는 북한의 광장 아닌 광장처럼.
이야기가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나는 그 리듬을 타고 어느새 명준이 되어 있음을 느꼈다.
마지막에 그가 중립국을 택하는 장면에서 나는 거의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명쾌한 답이라는 생각에서는 아니었지만,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이념과 사상에 영향받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명준이 그리 결정하였을 거란 걸 알았기에.
명준은 배 위에서 희끄무레한 존재가 항상 자기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곧 그는 그에게 이제 어찌할 것이냐는 물음을 던진 그 희끄무레한 존재를 알아챈다. 그것은 바로 흰 갈매기. 갈매기는 사랑하는 사람의 환영이라는 선장의 말을 떠올리며 명준은 또 생각한다. 은혜가 죽기 전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말을... 보통 갈매기보다도 반 정도로 작은 그 희끄무레한 존재가 어미와 함께 배 마스트에 올라 앉아 있는 걸 보면서. 그 갈매기가 은혜와 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명준은 생애 마지막을,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바다로 바꾼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어떤 사상과 이념도 인간을 가치롭고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대목이었다. 어떤 사상과 이념으로도 행복해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립국으로 간다 한들 그 고민이 사라질까? 아마 명준도 은혜의 자궁으로 뛰어들어가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굶주림과 범죄가 있다한들 그들에겐 자유가 있고 공산주의의 일체감과 평등이 게으름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어느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 중립국을 선택한 명준은 그래도 시원섭섭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명준이 원한 답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월북한 후 은혜를 만나 괴로움에 허덕일 때 그녀를 만날 때면 잊을 수 있었던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사랑이 있다면 사상과 이념 또한 허물어질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아직도 이념과 사상으로 다투고 있다. 지금 우리 나라를 보아도 그러하다. 남북이 갈라진 채 아직도 이념을 같이 하려고 들지 않는다. 서로가 원하는 무엇이 있기에 그걸 가지고 계속 싸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인훈의 광장은 “광장”을 원하고 있다. 진정 인간이 원하는 건 사소한 기쁨의 밀실이 아니라 모두가 원하는 넓은 광장이라고... 하지만 그 밀실 또한 광장이 비면 꼭 필요한 존재라고. 그 밀실을 해치지 말아 달라고.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진실로 원하는 광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동안만 나의 밀실을 비워둘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