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를 읽고 독후감 탁류

탁류
탁류[濁流]란 흘러가는 흐린 물, 또는 그런 흐름을 뜻한다. 물의 흐름을 인생과 비유하는 문학 작품들이 매우 많은데, 이 소설 역시 그러하다. 일단 주요 배경이 되는 군산이라는 공간이 이 제목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금강이 흘러 황해에 탁류를 쏟아놓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주사네 가족, 그 중에서도 가장 수난을 겪는 채봉이의 삶, 보다 넓게 보자면 식민지 상황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행한 삶, 경제적 정신적 파탄을 겪고 있고 모든 생활이 황폐화되어 가는 속에서 진흙탕같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탁류’라는 제목이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되는 것 같다. 이는 앞에서 말했듯 여느 문학들이 인생과 물의 흐름을 서로 비유하는 것에서만 그친 것과는 달리, 그 물의 성질이 탁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작품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한 흐름을 날카롭게 풍자하면서, 당시의 어두운 세태를 닮고 있으므로, 그냥 세월의 흐…(생략)

여학교를 졸업한,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이다. ‘신학문’을 배운 뒤 약제사의 꿈을 안고 약국 점원으로 일을 하며, 서울로 떠나자는 제호의 제안에 평소 동경하던 서울에 떠나고자 마음먹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에게 매우 순종적인 여성이며, 가족 내에서도 뭐든지 희생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남승재와 사랑하는 사이면서도, 집안 살림을 위해 고태수와 결혼하기도 한다. 이 비극적인 결혼으로 인해 이 여성은 기구한 운명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결국은 살인에까지 이른다. 이런 모습을 통해 작자는 식민지의 교육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일찍이 정주사는, 겨우 굶지나 않는 부모의 덕에, 선비네 집안의 가도대로, 하늘천 따지의 천자를 비롯하여 사서니 삼경이니를 다 읽었다. 그러고 나서 세태가 바뀌니 ??신학문??도 해야 한다고 보통학교도 졸업은 했다.
정주사의 선친은 이만큼 ??남부끄럽지 않게?? 아들을 공부를 시켰다

비슷한 맥락에서 정주사라는 캐릭터도 해석할 수 있을 법하다. 신식 교육을 받았고 학문 꽤나 했다는 정주사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노름만 일삼는다. 가장 의식에 얽매여 전통적인 가족 관계를 고수하고 밖에서의 비굴함을 집에서의 엄격함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그리고 딸을 부잣집으로 시집보내 팔자를 고치려는 생각에 들뜨기도 한다. 이 역시 당대 교육에 대한 작자의 부정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말하자면, 초봉이와 정주사는 당시 신식 교육을 어설프게 받은 대표적인 인물들로 남게 되는 것이다. 신식 문물을 제대로 수용할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문물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들, 피상적인 이점들만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리하여 ‘근대화’가 가지고 있는 악습만 좇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전통 사회에 머물 수도, 그렇다고 제대로 된 신식 문물을 수용할 수도 없었으므로, 뿌리 뽑힌 모습으로 살아간다. 초봉이의 비극적 삶은 ‘뿌리 뽑힌 자’들의 타락인 것이다.
이 소설 속에서는 경제상황에 대한 서술이 자주 나타난다. 고태수가 은행에 다닌 점도 그렇고, 투기나 고리 대금업을 통해 경제 현실에 대한 문제를 조명한다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초봉이의 비극적인 삶’에 집중되면서부터 ‘예쁜 여자의 고난기’라는 통속적인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아쉬웠다. 물론 그녀의 삶의 원인은 ‘가난’이었고, 이는 그 시대 상황을 아우르는 캐릭터로 설정된 것이겠지만, 이것이 개인적이고 통속적인 주제로 흘러 소설의 한계점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곧 문학기행을 떠나게 될 ‘군산’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일인들 중심의 신흥하는 중심지와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로 대립되는 도시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개복동, 구복동, 둔뱀이 그리고 이편으로 뚝 떨어져 정거장 뒤에 있는 ??스래〔京浦里〕??, 이러한 몇 곳이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도 넘는 조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비비면서 옴닥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면적으로 치면 군산부의 몇십분지 일도 못 되는 땅이다.
…(중략)…개복동이니 둔뱀이니 하는 곳은 한 세기나 뒤떨어져 보인다. 한 세기라니, 인제 한 세기가 지난 뒤라도 이 사람들이 제법 고만큼이나 문화다운 살림을 하게 되리라 싶질 않다.

이러한 구조는 빈부의 대립, 낡은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산부의 몇 십분지의 일도 안 되는 좁은 땅에서 군산의 인구 칠만명 중 육만이 넘게 사는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 세기나 뒤쳐졌다고 할 만큼 궁핍한 삶을 살면서도, 한 세기가 지난다해도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그 당시 식민지로서의 삶이 얼마나 황폐화 되었던가를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 소설 속의 공간적 배경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꽤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