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을 읽고서 탁류읽고

한민족의 20세기는 참으로 비극이라는 말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소설에 관한 나름대로의 간단한 주석을 달자면, 그런 비극적인 시대 현실을 나타내 줌과 동시에 우리에게 밝음과 어두움에 관한 고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먼저 소설의 내용을 짤막하게 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작품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정주사는 초봉이 계봉이 와 여러형제들의 아버지이며 초봉이의 비극에 관련이 있다. 초봉은 청순하고 순수하다 못해 무지한 아름다운 한떨기 앵두와도 같은 그런 21살의 처녀이다. 승재와 서로 첫사랑을 하지만 승재도 초봉이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승재는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박봉에도 불구하고 무료로 치료해주는 의사 레지던트 과정중인 건실한 젊은이다. 그녀는 승재에게 둔 정에도 불구하고 집안 형편 때문에 부모님의 장사 자금을 마련한다는 약속하에 평소에 약간의 안면만이 있었…(생략)

. 이런 이유로 제호는 초봉이와 파탈할려고 하는데 마침 이때 장형보가 나타나 갖은 모략과 연극을 꾸며, 제호와 헤어지게 한다. 곱추에 야수처럼 흉악한 형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며 초봉이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잃고 형호의 넘치는 정력으로 몸이 볼썽사납게 망가진다. 결국 초봉이는 절망에 빠지고 죽으려 하나 딸 때문에 죽지를 못한다. 문득 형보를 죽이고 자신이 죽으면 후환이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일을 준비하며 자신의 신세를 저주한다. 형보가 아이를 학대하는 것을 보고 이성을 잃은 그녀는 형보를 때려 죽이고야 만다. 승재와 동생 계봉이가 형보로부터 초봉이를 구출하려고 뒤늦게 와서 안타까워 하지만 때는 늦었다. 초봉이는 승재의 후일을 다짐하는 약속에 기대를 건다.
나에게 소설 속의 정주사나 여러 등장인물들은 목표를 잃은 막연한 체념상태에 있고 근시안적이며 비극적 상황에도 무뎌진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이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반증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치고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초봉이는 그토록 애련하고 연약하며 순수. 아름다운 풋풋함을 간직한 여인이었는데 원치 않는 비극의 늪으로 서서히 함구되어 가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비극적 운명을 맞아가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이끌려 가는 것이다. 이는 주관적인 해석으로 확대해 볼때 우리 민족의 비극으로 볼 수 있겠다. 초봉이가 비극을 맞는 모습은 마치 근대 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민족의 무력함과도 닮아있다.
나는 초봉이라는 여인에게는 동정과 연민, 형보와 태수 그리고 제호 같은 이들을 찢어죽이고 싶을 만큼의 증오를 느꼈다. 그렇지만 그러기에 앞서 너무도 답답 하기에 나는 그녀의 자세를 비판하고 싶다. 초봉이는 비극을 체념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고작 태수가 죽고 형보에게 몸이 더럽혀지고서 대처하는 것이 고작 제호에게 몸을 내맡기는 것이란 말인가? 물론 음흉한 제호의 꼬임에 넘어갔다손 치더라도, 그녀는 주체적인 삶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물론 그 시대의 여성에게 요구하기엔 무리겠지만 현시대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말이다. 결국 그녀는 운명에 피동적으로 이끌려 가고 당당히 맞서지 못한 것이다. 마치 감정 없는 인형이 남의 손에 이끌려 움직이듯이... 이런 피동적인 태도 역시 조선이 러시아나 여러 서구 열강 세력들에게 의지해서 독립을 유지하고자 한 것을 반영해주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초봉이의 비극에 대한 가족들의 태도 역시 당시 조정대신들의 태도와 비슷한 점이 없지 않다. 방관 하고 전혀 오류를 느끼지 못하는 듯 무던하다. 물론 이것은 나의 비약일지도 모른다고 치자.
마지막으로 몇 인물들과 배경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초봉의 아버지 정주사는 미두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면서 시종일관 실패하는데 이는 민족의 독립을 위한 여러 행위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덧붙여 태수 같은 인물들은 일제치하에서 자신을 잃고 오입과 주색을 일삼으며 목표를 상실한 모습을 제시해준다. 또한 미장이판이라는 배경은 어딘가 삶의 목표를 상실하고 근시안적으로 운에 매달려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것임에 분명하다.
무기력하게 비극을 맞는 초봉의 모습은 무력했던 조선의 모습을 상기시켜주어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슬플 따름이었다.
한민족의 근대사는 혹자의 말처럼 식민 반세기 분단 반세기로 통하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시련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된다. 우리는 시련과 갈등을 훌륭히 극복해 내면 발전과 끝없는 도약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토인비 박사의 `도전과 응전`의 논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초봉이의 비극은 `역사의 암담한 탁류`로 볼수 있는 것이다. 초봉이의 생활은 암담한 탁류와도 같았다. 그녀가 `명일의 약속`에 기댈수 있는 것은 승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역사의 밝은 청류`로의 기대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사랑스러운 우리의 여인 초봉이가 시련을 훌륭히 극복해 내어 밝은 청류에서 마음껏 목욕하며 청아한 몸에서 더러운 것들을 벗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우리의 근대사가 시련의 연속이었다면 우리 민족은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민족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시련을 극복해냈으니 미래를 위해 더욱 노력을 경주해야할 것임은 확실하다. 그렇게 한다면 엄청난 발전과 도약을 이끌어 내어 한민족이 세계무대에서 중심이 될 것이다. 우리 앞에는 무한한 청류가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