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움직이는성을 읽고나서 하울의움직이는성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읽고나서..
원작은 역시 위대하다. 영화를 보고 읽게 되면 하울의 이미지에 몰입되어서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게 되지만, 그래도 정말 재밌는 소설. 아이들 소설답지 않게 주제도 시니컬하고 참신하다.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 작가는 `셋째딸만 성공하는 동화의 세계`를 풍자한다. 맏이나 둘째인 소피와 레니는 일찌감치 동화 속 왕자님을 꿈꾸길 포기하고, 모자가게를 물려받아 꾸려나가거나, 마법을 배우러 계획을 세운다. 특히 첫째딸인 소피는 장녀 컴플렉스가 있다. 언제나 모자가게에 틀어박혀, 모자만 만들다보니 모자에게 말을 걸기까지 한다. `넌 부자집에 갈거야` `넌 최고의 매력을 지니게 될 거야` 마법의 세계인 이 곳에서 소피의 이런 말들은 주문이 되어 마법 모자가 되게 된다. 어쨌든 그러해서 소피의 모자가게는 나날이 번성중이었던 것이다.
영화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게, 소피는 마법에 걸…(생략)

미있다. 심장이 없는 하울은 계속 여자들을 만나러 다니는데, 여기에 소피가 일조하게 된다. 하울에게는 영화처럼 자주색에 회색 마름모꼴 무늬 옷과, 은색에 파란색 마름모꼴 무늬 옷 두가지 주로 입는 옷(모두 최고급품)이 있는데, 소피가 이걸 수선하면서 `넌 분명 여자를 꼬시는 용도일거야` 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마름모꼴 솔기 한 땀 한땀마다 주문이 걸리게 된다. 왠일인지 하울에게 넘어오지 않는 여자들도 결국 이 때문에 다 넘어오게 된다.
하울은 심지어 소피의 동생이나, 자신의 조카의 선생님까지 넘보는데, 결국 나중에는 `이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다` 고 약한 모습을 보인다. 일단 여자의 마음을 얻고 나면 식어버리는 하울, 그에게는 소피같이 어머니같은 여성, 장녀같은 여성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하울의 외모의 비결은 아침마다 화장실에 틀어박혀 1시간 동안 얼굴에 마법을 거는 것이다. 가끔 머리도 염색하는데 이 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허영심이 가득한 하울, 소피는 그런 그를 욕하면서도 어느덧 그의 철없음에 동정을 느끼게 된다. 역시 장녀는 어쩔 수 없다니까. 동생같은 하울을 그녀가 보살펴줘야지 어떡하겠는가. 감기에 걸려 앓아누운 하울이 계속 끙끙대면서 소피의 간호를 요구할 때 그녀는 약간 그가 불쌍해짐을 느껴버린다.
소피와 하울이 갑자기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색하긴 하지만, 하울의 심장을 되찾아줬으니 그럴 법도 하다. 캘슈파는 처음부터 소피의 마법능력을 믿고 그녀에게 계약을 풀어달라고 요구한 거였다. 소피의 마법능력은 생활에서 우러나온, 장녀에게 내려진 한 가닥 은총이었다. 그런 점이 맘에 든다. 뭐든지 열심히 하다보면 뭔가가 생기는 것이다. 그게 마법이던, 특별한 재능이던 말이지.
소설을 보면 확실히 황야의 마녀와 하울이 사귀었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는 슬며시 암시되지만 말이다. 마녀는 하울과 나라의 왕자, 그리고 설리먼의 몸체를 전부 합쳐 새로운 왕을 만들어내고 자기가 왕비가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으나, 당차고 무서운, 게다가 이제는 원시적인 마법까지 쓸 줄 아는 소피에게 된통 당한다.
이 소설은 완전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소피는 하울의 사랑을 받아주면서 `하울의 여자로 사는 건 엄청 힘들겠지` 라고 말한다. 하울도 그걸 알고 있다. 아무리 심장을 되찾았다지만, 여성편력을 그렇게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을까? 물론 소피는 지금까지 하울을 계속 괴롭혀왔고, 하울은 그런 괴롭힘을 참아내고 있지만, 티격태격 하면서도 끝내 잘 살아가리라. 동화속에서라면 조강지처와 바람둥이 남편은 결국은 해로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