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선물을 읽고 소설독후감 한나의 선물을 읽고

<한나의 선물을 읽고...>
새하얀 책표지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빨간 구두 한 켤레……. 난 어렸을 때 읽었던 빨간 구두를 생각하면서 어릴 적 동화를 읽던 깨끗한 마음으로 이 책을 들어올렸다. ‘한 어린 삶이 보낸 마지막 한 해’ 책표지에 쓰여 있는 글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이 짧은 생애의 마지막을 암과 싸우며 보냈던 한나의 이야기인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에필로그까지 한자리에서 읽은 이 책은 나에게 정말 마음에 와 닿는 책이였다. 나에게 죽음을 앞둔 가족이 있어서 이 책이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아니였다. 내가 지금까지 암과 같은 불치병으로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그런 소설들은 많이 읽어보았지만 ‘한나의 선물’ 이 책처럼 죽음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책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책 또한 다른 책들의 경우처럼 어린 아이의 죽음과 이를 슬퍼하는 부모의 이야기 정도로 단순히 생각했…(생략)

당돌하게도 의사들에게 말한다.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당신들은 친구가 아니니 모두 나가요.”라고 말이다. 어린 아이가 의사 선생님께 이렇게 당돌할 수 있을까? 여느 아이들처럼 의사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주길 바라는 한나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한나가 암 세포 제거를 위해 화학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한나의 엄마는 한나가 여느 아이들처럼 유치원도 다니고 아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모두 경험할 수 있길 원했다. 병원에서는 한나가 면역 체계가 심하게 손상되기 때문에 유치원에 다닐 수 없다고 했지만 한나의 엄마는 한나에게 유치원마저 빼앗을 수 없다며 한나를 기꺼이 유치원에 보낸다. 어떤 엄마가 이렇게 용감할 수 있을까? 한나의 엄마에게서 한나의 몸에 있는 암세포는 중요하지 않다. 한나가 언제까지 살던 행복하게 살길 원했던 것이다.
한나는 유치원 버스 타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였다. 유치원 버스를 타고 함박웃음이 가득했을 한나의 모습이 눈 앞에 선히 느껴졌다. 한나와 한나의 가족들은 한나가 암 진단을 받고 난 1년 남짓한 시간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배웠다. 한나가 하고 싶다면 집안일을 제쳐두고 손가락 그림 그리기를 했고, 수영을 너무나 좋아하는 한나를 위해 브로비악 도관이 수영장에서 세균에 노출되지 않도록 방수 패치 상자를 쓰면서 한나가 수영을 즐기도록 했다. 그리고 한나의 사랑스런 모습에 수프가 넘치던 말던 엄마는 말없이 한나를 꼭 안아 주면서 한나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꼈다.
한나의 종양이 척추에 재발했을 때 한나는 수술을 하지 않았다. 수술을 하더라도 종양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고, 조금만 제거하더라도 한나는 혹을 그냥 둘 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다가 죽을 것임을 가족들은 알기 때문이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한나의 오빠 윌을 엄마에게 묻는다. 한나가 새로 태어날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살 수 있느냐고 말이다. 이렇게 묻는 윌에게 엄마는 잔인한 진실을 어린 윌에게 이야기해 준다. 엄마는 한나가 그때까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밖에 모른다고…….
윌을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아이였다. 한나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죽은 고양이 버브와, 성경책에 나왔던 예수님과 그리고 엄마가 유산한 동생들이 있어 외롭지 않을 거라고 자신과 엄마를 위로한다. 이런 어른 같은 윌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린 아이가 어른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고, 엄마가 알려주지 않았던 사실들을 알고 있을 때 어쩌면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나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을 눈앞에 둔 한나가 애써 임신 사실을 숨기려는 엄마에게 전에 유산당한 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엄마 배에 귀를 대고 엄마를 위로하는 장면은 나에게 가슴 찡한 감동을 불러다 주었다.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 몸이 약해서 태어나지 못한 아기 말이야. 엄마, 그 아기 잃은 거 슬퍼하지 않아도 돼. 하느님이 벌써 우리한테 새아기를 만들어 주고 있으니까."
어른의 눈에 다소 엉뚱해 보일지 모르지만 한나는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누가 뭐라든 애정을 가지고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일까, 세살배기 한나가 보여준 일년 남짓한 삶은 자유롭고 충만한 삶이 였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나의 병이 깊어질수록 천진난만한 어린 딸에게 어떻게 죽음을 준비시키고 가족들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엄마, 하지만 4번째 생일을 맞기 전에 죽음을 맞는 한나는 놀랍게도 죽음의 공포에 떨기는커녕 가족들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할까봐 위로를 해준다. 한나가 이토록 죽음을 의연하게 맞을 수 있던 것은 자신을 돌봐주고 사랑해 준 엄마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한나가 가지고 있는 순수함 때문이였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자신이 죽어도 잊지 않고 여전히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영혼은 가족들 곁에 있으며, 언젠가는 엄마 곁으로 돌아온다는 그런 순수한 생각으로 한나는 기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갈 수 있었다. 죽음 앞에서 너무나 의연한 한나의 모습에 한나의 엄마는 다가오는 이별을 슬퍼하기보다 남겨진 나날을 감사하는 마음과, 삶에 대한 깨달음과 지혜를 배웠다.
한나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였다. 처음에는 한나의 죽음을 슬퍼하고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한나의 선물을 하나하나 받으면서 한나의 엄마는 다시 한번 행복을 느낀다.
한나의 선물 중에는 한나의 동생 마거릿과 매들레인이 있다. 이 두 아이가 큰언니 한나에 대해 묻자 엄마는 한나의 특별한 물건들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마거릿과 매들레인을 부른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오고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동안 매들레인은 한나의 분홍꽃무늬 잠옷과 한나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빨간 구두를 신고, 마거릿은 한나가 모아두었던 일회용 반창고를 온몸에 붙이고 엄마를 보고 근사하지 않느냐며 활짝 웃었다. 만약 내가 한나의 엄마였다면 한나의 물건들에 대한 한나와 나의 추억이 사라질까봐 두아이에게 무척이나 화를 내고 혼을 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의 엄마는 한나가 남긴 반창고와 잠옷과 빨간 구두에 아직 다 피지 못한 많은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한나도 이 철없는 두 동생을 근사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나의 엄마는 알고 있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은 하나라고, 그리고 진정한 삶을 평가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충만한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라고…….
이 책이 계속 슬픔을 자아내는 것만은 아니다. 한나가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그런 소중히 생각해야 했던 것들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니 이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한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한나의 삶이 한나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한나가 알지 못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의 가슴과 삶에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나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한나가 하늘나라로 떠난 슬픔을 딛고 일어서 다시 화목한 가족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한나의 아빠, 엄마가 이혼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중요하지 않다. 한나의 가족에게는 한나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이 마음 한 구석속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조그마한 책 한권의 무한한 따뜻함과 위대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