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 태평천하 3

태평천하
이번 겨울방학 숙제에 독후감을 쓰는 것이 있어서 채만식의 『태평천하』를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쓰게 되었다. 사실 이 작품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이미 한 번 읽어 본 적이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독후감 쓰기도 편할 것 같아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었는데, 읽다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양서는 다시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진다던데,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이 작품을 그저 하나의 코믹소설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된 지금, 나는 『태평천하』의 등장인물들의 외면적인 우스운 모습보다도 그들의 내면과 작자 채만식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읽다 보니,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많은 숨겨진 생각들을 발견 할 수 있었고, 그러한 하나…(생략)

도이다.
하지만 윤직원 영감이 이러한 수전노적 성격을 갖게 된 데도 나름데로의 이유가 있다. 그의 재산은 그야말로 피 흘리며 모은 재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재산을 노리고 집으로 쳐들어 온 화적떼에 의해 살해당했고, 윤직원 영감 자신도 치부(致富)의 과정에서 소위 `양복청년` 또는 `권총청년`에 의해 돈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때문에 그는 그렇게 희생을 통해 얻은 재산을 지키는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고, 재물에 대한 욕망은 나날이 커져만 갔던 것이다.
윤직원 영감이 화적떼에게 아버지를 잃고 "오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라고 울부짖던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세상과 그를 단절시키는 일종의 `선언`이었으며, 어쩌면 이 일을 기점으로 해서 윤직원 영감이 돈에 더욱 집착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돈의 노예가 되어 간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자식들은 윤직원 영감과 같은 치부(致富)에의 집착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피 흘리며 돈을 모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족들 사이에서 그의 재산을 지키고, 기울어져 가는 가세를 바로잡기 위해 혼자서 동동거리는 윤직원 영감의 모습이 차라리 가여워 보일 정도이다. 대문을 항상 잠고 다니라고 며느리를 호통하는 윤직원 영감의 행동도, 재산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불안함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의 체험에 자신이 구속되어 `집`을 세상과 단절된 하나의 `섬`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윤직원 영감은 일제 치하였던 그 당시를 태평천하라고 부른다. 화적떼가 나돌아다니고,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심해서 재산이 있어도 목숨이 위험하기 그지없던 세상에 비하면, 순경이 돌아다니고 그래도 법에 의해 통치되는 일제치하는 윤직원 영감에게만큼은 태평천하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시대가 태평천하였을까?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의 수탈을 받던 그 시대가 태평천하였을까? 그러한 시대가 태평천하라는 것은 그 혼자만의 허구적인 사회관이 아닌가 싶다. 거대한 시대착오의 환각 속에서 그는 홀로 살아갔던 것이다. 그는 시종일관 폐쇄적인 태도를 유지했으며, 이러한 태도는 그를 세상으로부터 더욱더 고립시켰다.
물론 이것은 윤직원 영감의 가슴아픈 체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폐쇄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당장은 위험이 줄어들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회 전체의 분위기에 도태되어 가고, 결국에는 시대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채, 자기 자신이 몰락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윤직원 영감의 이러한 태도를 나는 `자기 합리화` 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자신의 체험만을 극대화 시켜 인식함으로서, 자신의 폐쇄적인 태도, 이기적인 면을 합리화 시켰다. 실제로는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일인데도 말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쾌하게 생각한다 해도, 정작 윤직원 영감 자신은 당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의 경향은 오히려 현대인에게 더욱더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인정이 점차 사라지고, 복잡해져만 가는 현대 사회를 보며, 사람들은 그러한 사회의 변화를 수용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외면한다. 또한 외향적인 인간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며, 자신을 중심으로 울타리를 두르기에 급급한 내성적이면서 이기적인 인간들이 많아져만 가는 것 같다. 이러한 사람들의 말로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데, 아마도 윤직원 영감과 비슷해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들은 현실을 회피하기보다는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오늘날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라고 생각된다. 윤직원 영감과 같은 시대착오적이며, 자기합리적인 경향의 인간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