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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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폭풍의 언덕을 읽고
그는 한 여름 더위를 내게서 빼앗아 가버렸다. 상대를 압도할만한 강한 그 무엇인가를 나는 그에게서 느꼈다. 예전에 나는 그 히드클리프를 대했지만 명작이라는 관념밖에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시 내 앞에 선 그는 위대한 영웅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내가 캐더린이라면 하는 상상 속에 조금은 즐거웠다. 이제 그는 내 가슴 속의 히드클리프로 남게 되었다.
한 여름 밤 갑자기 퍼붓는 격한 소나기 속에서 나는 분하게 그와 대면할 수 있었다. 소설 속의 가공인물이었지만 그는 뜻밖에 찾아 왔고, 나는 그의 방문을 진정으로 감사하게 느꼈다. 사실, 나는 마음 깊숙이 그와의 만남을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진정 그의 입장에서 그를 이해하고 연민의 감정에 사로 잡혔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했었고 그의 횡포와 처절한 복수에 희생된 인물을 모두 외면하면서 나는 가장 가련한 인물이 그…(생략)

고,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해 보세요."

나는 얼른 말해 놓고 고개를 숙여 버렸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일까? 이말이 언젠가 자꾸 움츠려드는 자신의 껍질에만 파고 들려는 나에게 벗이 한 말이라는 것을, 그 순간 그에게 느낀 것은 미소, 단순히 나의 환상일까? 나는 그와의 어색한 분위기가 점차 밀려가고 주위가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그는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고 나 또한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운명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또한 버림받은 자식, 떠돌이 집시라는 운명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 자멸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나 자신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가정을 탓하여 자멸해 가고 있지는 않는지, 방황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여진 숱한 비겁한 행동, 옹졸한 생각, 나는 그에게 털어 놓았고 그 순간 나는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이 세상을 살아 가자면 돌고 도는 운명 속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 좀더 패기있는 행동과 영원한 젊음으로 맞서야겠다고 스스로 자신에게도 그에게도 다짐을 했다.

어둠 속에서 소란했던 빗소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와의 만남의 끝에서 그는 내게 또하나의 진실을 안겨 주었다. 복수는 복수만을 증가시킬 뿐이다. 단지 우리는 사랑만을 키워 나가야 한다! 는 것을 평범하면서도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우리네 마음가짐들, 그리고 이별을 나는 슬퍼하지 않았다. 이별은 더 큰 만남을 위해 치뤄야 할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휑하니 밝은 달빛이 어둠 속에 잔잔하게 스며들었다. 나는 좀 더 성숙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이와의 만남을 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나는 그를 잊이 않을 것이다. 다만 또 다른 책 속의 인물들과의 만남으로 나 자신을 살찌우고 싶고 그들을 사랑하고 싶기 떄문이다. 그래서 나 자신과의 만남에서 실망이라는 단어보다는 희망이란 단어를 껴안고 싶다.

그러나 생존해 있는 것들 중에서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나는 오늘 벅찬 희열로 잠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