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읽고나서 향수를읽고나서

주인공 그르누이는 1738년 한여름 파리의 음습하고 악취 나는 생선 좌판대 밑에서 매독에 걸린 젊은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다. 태어나자마자 그는 생선 내장과 함께 쓰레기 더미에 버려지나 악착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남고, 대신 그의 어머니는 영아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로부터 그르누이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된다. 그는 여러 유모의 손을 거쳐 자라게 되는데, 지나치리만큼 탐욕스럽게 젖을 빨고, 무엇보다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냄새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가 그 아이를 꺼렸기 때문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르누이 자신은 아무런 냄새가 없으면서도 이 세상 온갖 냄새에 비상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는 어두운 곳에서조차 냄새만을 추적하여 목표물을 정확히 찾아내기도 한다.
무두장이 밑에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미세한 향기에 이끌려 그 황홀한 향기의 진원인 한 처녀를 찾아낸다. 그는 그녀를 목 졸라 죽이고…(생략)

자들로 모두 머리칼이 잘린 채 나신으로 발견된다. 온 도시는 공포의 도가니가 된다. 스물 다섯 번째 목표인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향기가 나는 소녀를 죽이고 나서 결국 그는 체포된다.
그의 처형이 이루어지는 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가 광장에 나타나자마자 광포해져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무아지경에 빠져 든 것이다. 그르누이가 지금껏 죽였던 스물 다섯 명의 여인에게서 가져온 향기로 만든 향수를 바르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죽음은 면했지만 순간 그는 절망에 빠진다. 자신이 만든 향수로 인해 욕정에 사로잡혀 살인광인 자신에게 사랑과 바보 같은 존경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증오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도시를 떠나 그가 살았던 파리로, 파리 이노셍 묘지의 납골당으로 간다. 부랑자들 틈에 섞여 든 그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 만든 향수를 온몸에 뿌린다. 그러자 향기에 이끌린 부랑자들은 그르누이에게 달려든다. 알 수 없는 사랑의 향기에 취해 그의 육신을 모두 먹어 버린 것이다.










향수라는 이 책을 알게 된 것이 작년 겨울 때쯤이었을 것이다. 친구의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책이 눈에 띄어서였다. 그 친구가 이런 두꺼운 책 같은 것들을 읽었었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제목 아래의 조그마한 글씨가 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아마 나는 향수라는 제목과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_가장 큰 이유라 생각함)에 끌려서 책을 읽게 된 건지도 모른다. 절대 후회가 없었으므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호기심과 재미로 읽기 시작한 향수는 나에게 그 책을 택했다는 것에 실망을 안겨 주지 않았다. 소장하고서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 중 하나라서 친구들에게도 많이 추천하고 다녔었다.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후각에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기 위해 모든걸 포기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르누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어머니를 죽게 만들고 자신은 살아나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후각이 너무 뛰어나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를 바랬고 그로 인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는 모든 걸 ‘선택‘한 것이다. 오히려 천재적인 후각을 가짐으로써 그르누이는 삶을 망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향수의 마지막 부분은 정말 말 그대로 짜릿함을 주었다.『그러자 순식간에 저지선이 무너지면서 원이 허물어져 버렸다. 천사에게로 몰려간 사람들이 그를 덮쳐 바닥에 쓰러뜨렸다. 다들 그를 만지고 싶어, 그의 일부분이라고 갖고 싶어 안달이었다. 작은 깃털 하나, 날개 한 조각, 그 놀라운 불꽃을 두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다. 옷이 찢어졌고 머리카락과 피부가 떨어져 나갔으며 몸뚱어리가 물어 뜯겼다. 사람들은 손톱과 발톱을 세우고 그의 육체에 달려들었다. 마치 하이에나들 같았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아주 질겨서 쉽게 뜯어지지가 않았다. 아마 말이었다고 해도 힘이 들었을 것이다. 곧 여기저기서 단검이 번쩍이더니 그의 몸을 찔러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도끼와 칼을 이용해 둔탁한 소리를 내며 관절과 뼈를 토막내 버렸다. 천사의 몸뚱이는 삽시간에 서른 조각으로 잘렸다. 그걸 한 조각씩 움켜 쥔 사람들이 황홀한 쾌감을 느끼며 뒤로 물러나 먹기 시작했다. 반시간쯤 지나가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p.327』잔인하기는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엔딩은 생각지도 못했다. 쥐스킨트의 잔인함에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랄까?;;
쥐스킨트의 다른 책들도 구해서 읽어보려 한다. 좀머씨의 이야기, 비둘기, 콘트라베이스..
책을 읽으면서 가끔 킁킁되며 냄새를 맡았다. 나에게서 나는 냄새,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 집 냄새, 교실 냄새, 친절한 냄새, 자상한 냄새, 싸가지 없는 냄새, 사랑스런 냄새, 비겁한 냄새, 이기적인 냄새.. 중간 중간 책을 덮고 다른 일을 하다가도 냄새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나는 무슨 냄새가 날까.. 나도 잘 훈련하면 약간 더 발달해서 냄새를 더 잘 맡고.. 쓸데없는 생각만 한 것일지도.. 그러나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과 생각을 가져다주는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을 주었다.
독일문학이란 이런걸까? 읽는 동안에 계속 느낀거지만 참 기막히면서도 신기한 동화 속의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틀담 곱추가 생각나기도 하고 하여튼 읽고 나서의 뭔가 상쾌한 그런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