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허삼관 매혈기

허삼관 매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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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자신의 뜨거운 피를 팔아 가족과 자신을 지키는 한 사내, 허삼관, 나 혹은 당신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가장 빛나던 시절부터 그 시절이 저물 때까지 허삼관은 자신의 몸속에 용솟음치는 피 두 사발과 돼지간볶음 한 접시, 그리고 따뜻하게 데운 황주 두 냥으로 그의 한 생애를 굳건히 지킨다. 중국사의 중요한 장면인 문화대혁명 전후를 살아가면서도 역사의 거대하고도 무자비한 역사의 흐름까지 투명하게 통과시키고 온전히 충실한 인간으로 남은 허삼관. 그리하여 그는 지금도 나 혹은 당신의 가슴을 뜨거운 피로 적신다. 그리하여 그는 나 혹은 당신의 몸을 사람의 온기로 훈훈하게 데워준다.
허삼관은 외부세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위인이다. 그래서 그는 우직하고 어수룩해 뵌다. 아니, 아둔해 뵈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 허삼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진실함이 옹이져…(생략)

욕인 ??자라대가리??라는 놀림을 받을 때였다. ??피 흘려 번 돈??만큼은 꼭 아내와(결혼 전 외도를 한 아내일지라도) 핏줄을 위해 쓰겠다고 결심하지만, 두 번째 매혈에서도, 기근으로 가족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네 번째 매혈에서도 일락이를 끝까지 외면하지는 못한다. 더구나 허옥란의 외도에 대한 복수심에 마을 아낙과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 세 번째 매혈을 한다. 이제 허삼관의 젊고 싱싱한 피는 자신과 가족에게 큰일이 닥칠 때마다 돈구멍이 되어준다. 이후로도 그는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무수히 매혈을 일삼는다. 허삼관은 다섯 번째 매혈로 문화대혁명으로 농촌으로 등 떠밀려가 피골이 상접해진 일락이의 손에 돈푼을 쥐어주고, 여섯 번째 매혈로 이락이네 생산대장을 푸짐히 대접한다. 그리고 간염에 걸린 일락이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연거푸 네 번이나 피를 판다.

그러나 허삼관은 꼭 한 번 피를 팔지 못했다. 백발성성한 노인이 되어 열한 번째 매혈을 시도했을 때이다. 그는 꼭 ??피를 팔아 번 돈??으로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 냥이 간절하게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노쇠한 그의 피를 팔아주는 곳은 없다. 어린애처럼 엉엉 울고 마는 허삼관과 그를 부지런히 다독이는 허옥란. 노년의 어느 날, 나도 젊음의 짙은 그림자를 그리워하면서 허삼관처럼 엉엉 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옆에서 내 남편은 허옥란처럼 나를 열심히 달래고 있겠지.

이렇게 허삼관의 매혈 현장을 좇다 보면, 한 인간의 생애와 그 희로애락을 더듬어보게 된다. 허삼관은 피만 판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싱싱한 젊음, 팔팔한 열정, 따뜻한 온기, 귀한 목숨까지 더불어 팔아, 아내와 자식들을 보듬고 자신을 지켰다. 허삼관의 매혈 현장 한가운데는 언제나 아버지가, 남편이, 남자가, 사람이 있었다. 허삼관이 나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가 사람다운 정을 전해 주기 때문이다. 아들 일락이를 위해 끝까지 자라대가리 노릇을 포기하지 않았던 부정(父情)뿐만 아니라, 비판투쟁대회에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 아내 허옥란의 점심을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던 인정은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마운지, 얼마나 가슴 뭉클한 인간애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