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전을 읽고

허 생 전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 만화로 된 허생전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단순히 만화 영화 보듯이 술술 넘겨가며 읽었는데 이번 방학에 기회가 되어 글로 된 진짜(?) 허생전을 읽게 되었다.
일단 작가부터 흥미롭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본 것은 아니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 재구성한 책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었는데, 역시 박지원이었다. 만화책에선 느낄 수 없었던 작가의 의식이 속속히 들어났다.
먼저 주인공 허생은 남산골에 사는 가난한 선비며 10년 공부를 한다는 계획을 잡는다. 벼슬길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앉아서 공부만 한다니. 또 가난한 살림에 저런 계획을 잡는 것도 너무 염치없는 것 같다. 차라리 도적질이라도 해서 돈 벌어오라는 부인의 타박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마을 최고의 갑부인 변씨를 찾아간다. 아무리 그래도 남편에게 도적질을 하라고 말할 정도라니,…(생략)

은 건지는 몰라도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정말 신이 났다. 물론 현실을 개혁하지 못하고 패배자처럼 도망가는 삶으로 비춰질 수 도 있지만, 나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생각이다. 어차피 바뀌지 못할 현실이라면, 마음(뜻) 맞는 사람끼리 새로운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남산골로 다시 돌아온 허생은 변씨에게 엄청난 이자를 붙여 돈을 갚는다. 역시 돈에는 욕심 없는 허생?! 어느 날 변씨는 당시 어영대장이었던 이완에게 허생의 이야기를 하고 함께 허생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나라 정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허생에게 비웃음만 사고 쫓겨난다. 그 후, 허생을 다시 찾으러 가지만 허생은 이미 남산골을 떠난 지 오래였다. 처음엔 이완을 도와 나라를 구하려하지 않은 허생이 얄미웠는데, 당시 상황이 떠오르자 이것 역시 작가가 비판하려 함을 알았다. 이미 북벌론은 순수한 북벌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임진왜란과 후금의 침략을 받아 국가의 토대인 백성의 삶이 피폐했다. 따라서 전쟁을 뒷 받혀줄 돈과 식량도 없었거니와 군인이 될 사람도 부족했다. 또 왕(효종) 자체가 오랑캐에게 당한 수치를 갚아주고, 아버지의 체면을 살려야 한다는 명분만을 갖고 있었고 집권층 역시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밖에 생각안 하고 있었다니, 밖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현실 불가능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다시 읽어봐도 재미있는 책이지만 숨겨진 내용을 찾는 재미도 쏠쏠한 책 같다. 나름대로 (조금이나마) 해석한 것에 대한 왠지 모를 쾌감을 느끼며 다음번에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