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질을 읽고나서 호질

- 호질
지금까지 최신소설들만 읽어오던 나이기에, 나온 지 수세기가 지난 소설을 읽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모르는 한자어들도 많이 나오고 요즘 사용하는 말들과는 좀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과는 다른 시대에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생활을 모르는 나에게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었다. 조선 시대 소설이라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글 속에 나오는 `범`의 날카롭고도 구성진 풍자가 굉장히 구수하면서도 좋게 들렸다. 어렸을 때 할머니나 엄마에게서 듣던 옛날얘기가 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로 시작했기에 범이라는 대상이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에 나오는 ‘북곽 선생’과 ‘동리자’라는 과부는 겉과 속이 다른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깊은 밤 동리자의 방을 찾았던 유학자 북곽 선생과, 성이 모두 다른 다섯 아들을 둔 열녀 과부 동리자. 이들…(생략)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서로를 해치고 헐뜯는 것도 인간뿐이다. 인간은 질적으로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과학기술을 발달시키려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연과 동물들은 수없이 희생되었다. 그것은 질 높은 삶을 누리기 위한 무차별한 파괴였고, 결국 심각한 환경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모두 인간이 제일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연이 살고, 동물이 살아야 인간도 살아갈 수 있으며. 남이 잘 되고 편안해야
나도 편안할 수 있다. 이를 잊고 자신들이 세상의 전부인 양 살아간다면 그 끝은
패망일 수밖에 없다. 이는 편안한 삶을 위해 자신의 소유물인 양 자연에게 피해를 입힌 결과물이다. 꼭 자연 뿐만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배려가 필요하다. 좁은 비탈길에서 서로 먼저 가겠다고 서로를 밀어내며 올라가려 해 봐야 결국 양쪽 다 넘어지기 마련이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미덕이, 서로에게도 이득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북곽 선생은 다시 한 번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범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갖은 아첨을 하던 모습은 어딜 가고, 대낮에 왜 길에 엎드려 있냐는 농부의 질문에 하늘이 높고 땅이 넓어 엎드려 절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뭔가 뒤바뀐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본디 학문을 익히는 것은 자신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함이다. 책을 읽고, 옛 성인들의 말씀을 보면서 인격과 인품 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곽 선생은 여태까지 쌓아 온 학문과 지식을 자신의 이중성과 이기적인 면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이중적인 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호랑이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모습이었다가 농부에게는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자신의 학식을 과시한다.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약한 모습이 조금의 여과도 없이 그대로 보여진다.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가려면 이와 반대로 되어야 한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그보다 약한 사람이 되어 그를 높여주고, 강한 사람 앞에서는 기죽거나 아첨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내세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정말 강한 사람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호질’에서는 다른 소설에 비해 이중적인 면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런 모순들을 보여줌으로 해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알려주려는 듯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잘 보이길 원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이 있다면,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실천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힘쓴다면, 겉은 번지르르할지 몰라도 내면의 모습은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쓴 북곽 선생의 모습처럼 될 것이다. 세상에서 오직 나만을 중요시하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을 어찌 인간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이제 인간의 본모습을 찾을 때이다. 자신의 이익과 욕망만을 채울 것이 아니라, 남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남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 따위는 버리고 자신의 내면을 넓혀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