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모랫말 아이들`을 읽고 모랫말 아이들

황석영의 `모랫말 아이들`을 읽고
지금 어른이 되어 나는 알고 있다.
삶은 덧없는 것 같지만
매순간 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며 따뜻함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이 문장들 때문이었다.
책 제일 첫 장에 간결하게 쓰여진 몇 줄....더 보지도 않고 이 책을 집게 된 이유였다.
집에 와서야 내가 너무 성급히 책을 고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온 책을 처음 읽을 때 잘 고른 책일까 아닐까 하는 조금의 떨림은 누구나 있겠지. 먼저 이 문장들을 알게 된 것으로도 이 책은 한 권 가져도 괜찮다고 마음을 달래며 약간의 설레임으로 책장을 넘겼다.
책을 읽은 다음날 여느 때처럼 출근하여 복도를 지나다 문득 마음에 젖어든 이야기가 느껴졌다. 그것을 뭐라고 설명해야할까...어둠 속에 빛나는 따스함. 작가가 첫 장에 썼던 저 구절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눈…(생략)

놈이 빈둥빈둥 놀며 누이들에게 그따위 짓이나 시킨다며 손가락질 받는 그의 삶도 마찬가지로 자의에서였든 타의에서였든 이제는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판결된 나와 다른 너였다.

이렇게 세상은 덧없고 어두운 것 같지만 작가의 말처럼 글 속에는 빛나는 따스함이 있다.

떠돌다 자리잡았던 마을을 떠나기 전 꼼배는 그 동안 신세 값음을 하듯 그 마을 시내 위에 두 사람이 엇갈릴 만한 넓이의 다리를 지어주고 사라지듯 떠난다.
귀남이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제 딴에 한 가닥 고마움이고 따스함이었을지 모를 제 또래 화자에게 헤어짐의 자리에서 꼭 쥐고 있던 단추를 건네며 마음을 전한다.
참 모를 일이다. 때론 어두움이 되는데 한 몫을 더하는 사람들이 때론 따스함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니까.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상처를 더하게되는 곳도 사람들 사이고 따스함을 느끼는 곳도 사람들 사이에서니까.
세상은 어떤 이에게 또는 어떤 시대에는 더 어두울 수도 밝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어지는 세상과는 다르게, 혼자 힘으로는 어찌 해보기 어려운 세상을 상대로 한 것과는 다르게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선택이라는 것이 있는게 아닐까? 어두움에 합해서 행동할 것인가 밝게 빛나는 따스함이 될 것인가를 말이다.
우리는 내가 인정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다루는 다른 잣대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나와는 다른 대우를 받아도 되는 누군가가 있을까?
너와 내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 자체에는 이미 따스함이 담겨져 있다. 여기서부터 따스함이 출발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가지면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하는 감성지수도 훨씬 풍부해질 것이다. 나를 이해하듯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지금과 상황이 다르고 일이 다를 뿐이지 이 책 속에는 세상 사는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손가락질 받던 상이군인이 몸을 던져 동네 사람을 구하기도 하고 동네 친구들의 집안 이야기, 친구 할머니의 죽음 등 그저 그 당시를 살아가던 이야기들이다. 때론 속물스럽고 어두우며 때론 정겹기도 한 순간들이다. 그러나 여러 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김없이 그 속에 흐르는 사람 사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삶이 매순간 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라고 한 것은 역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따스함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내가 삶 속에서 빛나는 따스함이 될 수 있을까? 따스함을 알아 볼 수는 있을까? 그렇지 못한다면 절대 삶이 매순간 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어두운 시대를 빛냈던 따스함이 지금 우리시대에도 있을까? 역시 따스함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는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글을 쓰려 책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지금도 나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본다.
풍경화를 보듯
단어들이 늘어서서 만들어 낸 그림을 가슴으로 들여다본다.
보면 볼수록 따스함이 전해지는 그림이 아닌가.

삶은 덧없는 것 같지만
매순간 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며 따뜻함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