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 도킨스 -
우리들은 이제까지 번식의 주체는 개체라고 생각해왔다. 때문에 개체의 자손 번식 욕구와 자기 보호 본능 등에 입각하여 생명체의 행동을 설명해왔다. 하지만 이런 이론만으로는 곧 동물들의 행동 해석에 크나큰 장애에 부딪히게 됐다. 이른바 자살 행위라던가 개미 사회에서 한 마리의 여왕개미를 위해 수많은 일개미들이 오로지 일만 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자기와 가장 닮은 자손의 번식 기회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희생해야만 했던 행위이기에 개체를 동물 행동에서 최소 단위로 보아왔던 기존의 견해에서는 설명하기 난해했던 행위였다.
하지만 도킨스 등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생물체는 이기적 유전자가 자신을 퍼뜨리기 위해 타고 있는 탈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이제껏 생각해왔던 것처럼 개체가 번식의 최소 단위가 아니라 바로 DNA란 물질이 번식…(생략)

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이론을 다음의 관점에서 비판해보고자 한다.
과연 생물 그 자체가 가지는 특질이 모두 이 환경에 적합한 합목적성을 지니고 있다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가? 생명체 내부의 모든 기작들은 정말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그 하나하나가 생명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역할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생명체가 취하는 모든 행동이 과연 그 생명체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행동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가? 사실, 생명체의 행동이 그 생명체를 위해 이익이 된다는 확신도 없다. 우리는 그걸 가정하고 모든 생명체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찾으려 노력할 따름이다. 사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자신의 유전자 이익을 따져 그 사람을 구해주는 사람 따위는 없다. 인간으로써도 하기 매우 힘든 복잡한 유전자 이익 계산을 동물의 본능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 자신의 유전자를 번식시키는데 가장 최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논리의 비약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또한 단순히 자기 자신을 복제할줄 밖에 모르는 DNA가 그런 고도의 논리를 세워서 자신의 번식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도 무슨 근거인지 모르겠다. DNA가 어떻게 생명체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DNA가 생명체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수단은 그 자신의 배열로 인해 생성되는 단백질뿐이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을 보존하려고 하므로 자신의 배열이 바뀌어 그러한 단백질을 생성해 낼리는 없고 (만일 그런다손 치더라도 이기적 유전자가 대체 어떤 판단 과정을 거쳐 그 배열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이것 또한 굉장한 문제점이다) 결국 다른 이기적 유전자를 바꾸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창조해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메커니즘의 문제뿐 아니라 생명체의 유지 및 존속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모순이다. 이타적인 유전자의 존재 가능성 등도 이 책에서 고려되고 있으나 그렇다면 어떤 차이점이 유전자의 성질들을 좌우하는지 그것 또한 해결되어야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예외성이다. 인간도 엄연히 생물체임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행위를 빈번히 행한다. 다른 생물체의 경우, 모든 유전자가 이기적이어서 각자의 번식을 위해 치열히 경쟁을 하는 반면에 인간은 그러한 경향성이 적고 더불어 억제를 할 수도 있다? 이 차이점이 어디서 오는 건지 밝히는 것도 큰 문제점이다. 유전자가 생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궁극적 원인이라면 이러한 예외성은 필히 제거되어야만 할 것이다.
생물학이 기본적으로 변인이 너무 많아 명확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생물학의 모호성(이 말을 듣고 생물을 공부하는 아이들은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물학은 모호하다. 그러한 사실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나는 물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물리에 빗대어 말해보자면 생물학의 어려움에 비하면 물리는 너무 쉽다 라고 말해줄 수도 있겠다. 다만 그런 만큼 생물학은 정확한 답을 산출해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뒤에 숨어 상황논리에 맞추어 그 때 그 때 상황에 대충 끼워 맞추는 식의 이론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나는 이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대해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싶다. 사실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내용은 오로지 그 자신으로써 표현되는 염기 서열밖에 있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타적 유전자에 관한 연구라던가 어디까지가 한 객체로써의 유전자인지 판단하기는 매우 쉽지 않다. 때문에 이 쪽의 연구는 아마 인문과학과 마찬가지로 크게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이 정도로 취급되어야만 할 것이다. ‘옳지는 않지만 적용시켜 보았을 때 올바른 예측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론’ 정도로 말이다. 물리학의 QED 이론과 비슷하다. 대체 자연의 운동이, 자연의 성질이 종이 위에 그리는 이상한 화살표들과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자연이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이러한 계산을 수행해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도 아닐 텐데 어찌하여 이런 식으로 계산한 결과들이 실제 자연의 행동 모습이 될까? 아무도 그것은 모른다. 앞으로 어떤 식의 논리가 나와 그 둘의 관계를 밝힐지 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현재로써 그 둘의 관계를 밝혀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QED가 현대 물리의 정수로써 존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이론의 방법으로 올바른 해, 즉 실제 자연의 행동 양상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 또한 그렇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실제 세계에 대해 예측하는 것이 수월해지는 것이다. 앞으로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어떤 발전이 이루어져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얼마나 밀접하게 기여를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