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를 읽고 태평천하 3

‘태평천하’를 읽고...
채만식의 ‘태평천하’는 1930년대 일제치하 속에 그 시대를 태평천하라고 생각하며,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윤직원 영감의 집안이 몰락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책에서는 좀 더 생생하고 재미를 두기 위해서인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였는데, 전라도에 살고 있는 나도 글을 읽는데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모르는 단어도 있어서 한 층 더 답답했던 거 같다. 하지만 윤직원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작가의 풍자적인 표현에 생각 의외로 재미있기도 하였다.
처음 이야기는 윤직원이 명창대회 구경 후 인력거를 타고나서 품삯을 주는 일에서 시작된다. 인력거꾼이 삯을 좀 더 많이 받고 싶어 “그저 처분해 줍시오!” 라고 하자, 윤직원은 그냥 가려고 했다. 조금 뻔뻔하긴 해도 윤직원의 말을 들어보면 일이 있는 말인 것 같다. 탄 사람 마음대로 하라는 뜻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 않…(생략)

또 아끼는 것인지... 하지만 이러한 그의 성격은 어릴 적 그의 집안 일 때문에 생긴 성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버지 윤용규는 어느 날 공돈 200냥이 생긴 뒤로 도박에 손을 떼고 열심히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었지만 화적 떼에게 죽임을 당하고 도망쳤던 아들 윤두섭은(지금의 윤직원) 아버지의 시체를 끌어안고 “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라고 부르짖으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던 것이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윤직원이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의 아버지 윤용규가 자기만 잘 살 것이 아니라 다른 이웃도 도와주었더라면 그런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했다. 어찌됐든 이런 고난을 겪으며 돈을 모았는데 그것은 브로커 올창이와 돈놀이로 즉, 고리대금업으로 모은 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항상 이것은 자신이 떳떳하게 일을 해서 번 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하며 번 돈이 정말 정직하고 떳떳한 돈인가? 어떻게 보면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너무 헷갈렸다.
시골 도둑과 자기 후손들의 교육을 기회 삼아 서울로 이사를 온 윤직원은 문벌이 변변찮은 것이 마음에 걸려 족보에 도금을 하고 새로 만들었으며 향교 우두머리 직함인 ‘직원’을 돈을 주고 사고, 자식들을 양반혼인을 시켰다. 그리고는 손자 둘을 군수와 경찰서장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맏손자이자 군수감인 종수는 군수 한답시고 시골에 가서 첩살림을 하고 있었으며 둘째 종학은 일본 유학을 가 있어 윤직원이 가장 기대를 하는 인물이면서도 본부인과 이혼을 한다는 말썽을 부렸다. 윤직원의 딸은 남편이 일찍 죽고 과부가 되 친정에 와 있고 아들은 다른 곳에서 첩살림을 하며 노름을 즐겨하였다. 또한 윤직원에게는 첩에게서 낳은 아들인 태식이 있었는데, 증손자 경손이와 같은 나이로, 모자라는 태식을 예뻐했다.
집으로 와 허기가 진 윤직원은 저녁을 먹던 중에 맏며느리와 한바탕 싸우고는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마침 브로커 올창이가 와 있어 빌려주는 돈에 대한 이자를 정하였다. 그 때 호외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중일전쟁으로 매일 호외가 돌았는데 윤직원가 올창이는 일본을 감싸며 아라사 꾐에 넘어가서 사회주의를 하는 중국을 일본이 혼내주는 것이라고 한다. 한참 일제시대 속에서 저런 마음을 갖는 사람도 있다니.. 그럼 일본이 우리나라에 하는 짓은 대체 어떤 시각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였다. 하긴.. 저런 양반들은 경찰이 있어 도둑걱정 없고, 자신의 일도 잘 되어가니 그야말로 ‘태평천하’인 시절이겠지마는...
올창이가 가고 윤직원은 어린 기생 춘심이를 기다렸다. 춘심은 윤직원의 6번째 애인으로 나이도 겨우 15살 밖에 안 먹었다. 72살인 윤직원과 비교할 때, 증손자가 되는데 윤직원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한심하고 징그러웠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윤직원이 저러하니 자식들 역시 본 부인만 보고 살겠는가...
새날이 밝아 오고 윤직원은 어제 춘심이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춘심이에게 반지를 사 주었다. 이 때 평소 돈이 필요한 일이 아니면 오지도 않던 아들 창식이 일본에서 온 전보를 가지고 찾아오자 윤직원은 왠일인 듯 싶었다. 창식이, 종학이가 사상관계로 일본 경시청에 피검 되었다고 쓰인 전보를 윤직원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믿었던 종학이가 윤직원이 그토록 싫어하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붙잡혔다니 수천 길 밑으로 꺼져 내려가는 듯 아찔했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 태평천하에 만석꾼 집 자식이 무슨 이유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것인지 쳐 죽은 놈이라 소리를 치며 부르짖는 소리가 차차 사랑께로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렇게 끝나버린 책을 덮으며 언제 다 읽을까 하며 열었던 책장을 덮게 되어서 시원하기도 했지만 정말 저대로 윤직원의 집은 무너져 가는 것일까, 종학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들의 여러 뒷이야기의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궁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 책을 읽고 황당하고 우습기도 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윤직원의 보안법이었다. 안력이 쇠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소변으로 눈을 씻고, 동변을 먹기 위해 이웃집 아이에게 돈을 줘가며 아침마다 가져와 마셨다. 이 부분을 읽으며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고 정말 그런 걸 믿고 그대로 하는 윤직원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기도 하였다. 정말효과가 있다면 세상에 어느 누가 안력이 쇠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또한 윤직원이 돈을 쌓아두기만 하는 것이 나에게는 참 어리석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윤직원의 말대로 죽어서 재산을 가져갈 수도 없는 것인데 왜 그리 아끼는지 모르겠다. 돈을 쓰려고 버는 것이지, 쌓아두기만 하려고 버는 것도 아니고.. 남도 돕고 자신을 위해서도 쓰면서 살면 좋으련만...
그리고는 과연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한 진정한 태평천하란 어떤 시대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생각에 잠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