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앵무새 죽이기
최근 3년간, 처음으로 돈 주고 산 책 `앵무새 죽이기`.
부모님께서 소장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책은 사 주시지도 않을뿐더러 (가까이 있는 도서관을 애용하시라는 말씀이셨다),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해도, 자기 용돈을 모아서 사라고 하시기 때문에, 도서관, 책방, 친구, 친척 등 줄이 닿는대로 빌려보기만 했던 내가, 정말 큰 마음 먹고 산 책이다.
큰 맘 먹고 샀다고는 하지만, 미리 책을 선정하고, 돈을 모으고 하는 계획적 구매가 아니라, 그저 책방에 갔다가 제목만 많이 본 책이여서 무턱대고 사버린 충동구매였다. 여기저기서 이런말 저런말 들어봤지만, `재미없다` 라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었고, 또, 책방 아줌마가 꽤 괜찮은 책이라고 말하시는 바람에, 귀 �塚� 나는 당당히 만원짜리를 들고 가, 달랑 200원 남겨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놀지말고 공부하라시던 엄마의 말씀을 한 귀로…(생략)

피부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피부가 하얀 백인들에게 무시와 핍박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그들은 모진 수모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에서는 `톰 로빈슨사건` 이 이것을 드러내고 있다. 흑인을 변호하는 변호사인 아버지가 충분한 승산이 있는 재판에서 져 버리자, 어째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은 이기지 못하는가 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스카웃과, 무언가를 깨닫고 한동안 우울해하는 오빠 젬.
재판에서 진 와중에서도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흑인을 속이는 백인은, 그 백인이 누구이건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건 아무리 명문 출신이건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라며 아이들의 생각의 폭을 넓고 깊게 만들어 준다.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한게 만들 수 있는 이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 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해준다. 덧붙여, 너희가 그 뒤를 따르라는 말도.
`톰 로빈슨 사전` 말고도 이런 저런, 여러가지의 재미있고, 힘들고, 흥미로운 일들이 지나가고, 스카웃과 젬은 그 모든 일상생활에서 아버지를 통해 올바른 길을 따라간다.

주인공인 스카웃은 고모가 생각하는 `숙녀`와는 거리가 먼, 멜빵바지를 즐겨입는 철없고, 뛰놀기 좋아하는 아이다. 호기심도 많고 엉뚱한 생각도 많지만, 아빠와 오빠, 그리고 이웃들을 생각할 줄 알고 진실된 눈을 가진 그 아이는 개구지긴 하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하지만, 그런 스카웃보다 더 가슴에 남았던 사람은 스카웃과 젬의 아빠, 애티커스 핀치이다. 주위의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흑인을 변호했던 사람. 재판에서 졌음에도, 이것이 한 발자국이 되었으니까,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명사수란 별명을 가졌음에도 자칫 다른 생명을 빼앗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총을 들지 않는 사람. 자식에게 정직한 자신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던 사람. 다른 새를 죽이는 것은 몰라도,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앵무새`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고 말한 사람. 스카웃의 질문에 언제나 웃으면서 자상하게 대답해주던 사람. 모두에게 공평했던 사람. 그리고 집 안에서나 거리에서나 법정에서나 언제가 한결같았던 사람, 바로 그 사람말이다.
주인공 스카웃이 그러했듯이, 나도 그에게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아야 한다`라는 것을 가슴으로 깨달았고, 그리고, 진정한 나이를 먹게�榮�.
평균 신장이 커지고, 평균 연령이 늘어나면 뭘하는가. 그 안은 속빈 강정과 같은데. 인종문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상 생활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나이는 아직 스카웃보다 어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바란다. 이 책이 나에게 그랬듯,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동과 깨달음의 선물을 주기를. (그리고 충동구매였음에도 불구하고 후회라는 것은 머리카락만큼도 들지 않았다.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