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향수 6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고
향수. 얼핏 보기에는 그저 고고하고 우아한 하나의 단어일 뿐이지만,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너무도 깊다. 자신에게 결핍된 것,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것, 그것을 채우고자 하는 바램과 무의식 속의 몸부림. 자신에게는 없는 ‘향기’를 채우고자 하는 갈망의 응집체. 그것이야말로 향수인 것이다.
이야기 속의 그루누이는 태어난 직후 어머니의 손에 거의 살해당할 뻔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어머니는 미혼모였고, 그루누이는 원하지 않는 아이였다. 아무런 기대도, 아무런 보살핌도 없이, 그저 묵묵히 태어나기만 한 존재. 그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결핍된 것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의 뱃속에서 숨쉬는 아이에 대해 무심하며, 그저 태어난 그 아이를 말없이 내버려둘 생각만을 하는 어머니의 몸속에 있을 때부터, 그에게는 누구나가 가지고 태어나는 어떤 것이 결핍되어 버렸…(생략)

시 일종의 괴물이었으나, 그의 대응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캐시가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외면하고자 했다면, 그루누이는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집착해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아내고 빼앗고자 했다.
그루누이가 찾아낼 수 없고 알아낼 수 없는 향기란 없었다. 숲 속의 나뭇잎, 화사하게 피어난 봄 꽃, 쌓아올린 목재더미에서 나는 아련한 냄새.... 그 어느 것도 그의 후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세상 속에 가득한 수많은 향기들에 그는 얼마나 집착했던가! 자신이 얻지 못했던, 가지지 못했던 어떤 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의 코는 끊임없이 킁킁대며 공중을 떠도는 수 만 가지의 향기들에 탐닉했다. 그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빠뜨리면 안 된다는 듯이.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타인의 사랑에 더 민감해지고, 더 큰 집착을 갖는다. 굶주렸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면서 결코 배를 곯지 않고자 한다.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상처받았던 이는 버림받지 않고자 얼마나 큰 몸부림을 치며 얼마나 애절하게 소유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몫의 사랑과 자기 몫의 향기를 박탈당했던 그루누이는 그 ‘향기’가 애달프리만치 소유하고 싶었으리라. 사랑을 해보지 못한 소녀들은 수많은 책들을 읽으며 온갖 낭만적인 이야기를 알고 달콤한 꿈에 대해 수없는 상상을 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기에 그것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향기를 갖지 못한 소년이 향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듯이.
그리고 어느 이름 없는 향수 제조인의 밑에 들어간 그루누이는 하나둘씩 자신만의 향수를 만들어 나간다. 이제 그는 단순히 향기를 채집하는 자가 아니다. 향기를 만드는 자인 것이다. 갖가지 향기로운 꽃과 액체들, 그것은 그의 손에서 하나로 배합되어 너무도 아름다운 형태로 화해 간다. 그가 만든 향수로 인해 그의 스승은 삽시간에 유명해 진다.
그는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향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향기를 가지지 않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향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향기를 알고, 그것들이 어우러졌을 때 어떤 향기로 변할지도 완벽히 예측하는 것. 자신의 몸에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이가 그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비어 있는 그릇이야말로 가장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는 법이던가. 그가 만들어내는 향수들은 아름다운 귀부인들의 드레스에 뿌려졌지만, 막상 그 자신의 몸에는 여전히 아무런 냄새가 없었다. 사람은 무언가를 잃어야만 진정 그것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수많은 예술 작품들은 사랑을 잃은 고통 이후에 탄생되었다. 사랑하는 이는 잃고 난 후에야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향기는 자신에게 없을 때 진정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찌나 큰 모순이요 형벌인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자들은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그루누이는 그 소중함을 절절히 알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큰 부조리인가. 한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박탈하고, 그것을 갈망하며 찾아 헤매게 하고, 그러나 끝내는 주어지지 않게 하는 것. 그루누이는 결국 ‘사람 냄새’가 나는 향수를 만들어 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가짜일 뿐 자신의 냄새는 아닌 것이다. 날 때부터 주어지지 않고 끝내 가질 수 없는 것, 그것은 사람을 얼마나 극단으로 몰아가는가. 갈수록 커져만 가는 그루누이의 향기에 대한 집착은 결국 살인이라는 형태로 변하고 말았다.
더없이 아름다운 처녀들을 죽이며 그들의 ‘향기’를 모으는 살인마.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그 ‘사람’의 향기를 얻기 위해서 그루누이는 결국 자신의 손에 아무렇지도 않게 피를 묻히게 된 것이다. 결국 마지막은 그런 것일까. 자신에게 없는 것을 아무리 주위에서 찾으려 해도, 결국 가장 완벽하고 가장 갖고 싶게끔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자신과는 달리 운 좋게도 냄새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들, 그들의 향기가 다른 어떤 자연의 향기보다도 더욱 완벽하게 느껴졌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명의 인간을 광기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그런 모순. 세상은 이러한 모순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결국 철저하게 무너진 하나의 인간으로써 사라져간 그루누이. 결국 우리는 모두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였다고 말할 것이다. 이 ‘괴물’을 욕하며, 냄새가 없었던 이 괴물을 욕하며, 그가 사라진 것을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그, 그루누이의 눈에는 우리 모두가 괴물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는 없는 것을 당연하게 소유한 사람들,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았던 냉혹한 사람들. 세상은 왜 이런 모순들로 가득 차 있는 걸까. 왜 못 가진 자가 있어야만 하는가. 왜 많은 자들은 가지고 있는가. 왜 못 가진 자는 그것으로 인해 스스로를 몰아치고 파멸시켜야 하는가. 왜 가진 자는 자신이 가진 것의 귀중함을 알지 못하는가. 소유란 무엇이고 결핍이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에게는 없는 ‘향기’를 찾아, 자신을 위한 ‘향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이 분명 있으리라. 결코 얻지 못할 그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면서. 우리는 왜 그것을 알지 못할까. 왜 세상이 이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일까. 언뜻 보기에는 참으로 냉혹한 살인마의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루누이라는 인간 안에 상처 입은 한 청년의 모습을 보았다. 방황만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간 방랑자의 모습을.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우리의 가슴 속에는 분명 어딘가 상실된 부분이 있다. 채워지지 않은 곳, 텅 비어버린 채 채워 넣지 못하는 곳. 우리는 알아야 하리라. 서로의 가슴 속에 있는 그 상처를 보듬어 주어야 함을. 결코 채우지 못할 그것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끝없이 고통 받는 이들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함을. 결점이 없는 인간이란 없다고 하였다. 서로의 가슴 속의 허공을 알고 그것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감싸주고자 할 때, 인간은 비로써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