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읽고나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읽고나서 집에 막 돌아 온 아빠의 구두를 자세히 관찰하면 그 날 아빠가 보냈던 하루를 대충이나마 짐작 할 수 있다. 먼지로 뒤덮이고 힘이 없는 구두는 그의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피곤했던 하루를, 집을 나가기 전 상태 그대로 깔끔한 구두는 한가하고 여유로웠던 하루를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구두의 상태는 그 사람의 일상, 또는 기분이나 생각을 나타낸다고 믿게 되었다. 권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항상 자신의 구두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렇듯이 나 역시 권씨가 그의 구두처럼 최상의 삶을 살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경제적 자립은커녕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따라서 나에겐 정성을 다해서 구두를 닦는 권씨의 모습은 불쌍하게 비춰졌고, 그의 생활과는 어울리지 않게 번쩍거리는 구두…(생략)